[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송충이는 솔잎을, 근로자는 근로의 대가를 먹고살아야 한다. 그게 형편에 맞게 사는 것인데 요즘 세태를 보고 있자면 되려 솔잎에 찔려 피 흘리는 송충이들이 많다. 생존에 필요한 솔잎을 확보하기 위해 송충이는 열심히 땀 흘리며 움직였지만, 누군가 이런 송충이를 뾰족한 솔잎으로 찌르고 있는 것이다.

근로자가 어느 한 사업장에 고용되어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에 명시된 근로 조건에 맞춰 일하고, 정해진 날짜에 급여를 받는 것은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가 아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잡음이 신문 사회·경제면을 차지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이다.

기자가 취재했던 하이트 진로 농성 사건도 그렇다. 노조의 주장 중 ‘임금 정상화’의 경우 15년간 머물러 있는 임금을 올려달라는 것인데 15년간 그들이 실어 나른 맥주값도 올랐고 경윳값은 국제 정세 영향으로 휘발윳값을 뛰어 넘은 지 오래다. 해마다 최저임금도 올라가는데 15년간 동결 수준의 월급을 과연 합리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정세에 맞춰 정당한 근로수당을 지급했다면, 근로노동법에 근거한 기본권을 보장해줬다면 위험을 감내하고 고공 농성을 벌이는 사태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노조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사회와 구성원인 시민에게 직·간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면까지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다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조들의 불법 폭력 사태로 보아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본질을 벗어나 ‘폭력 사태’라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또 여론을 돌리는 반쪽짜리 문장일 뿐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우리가 여기는 폭력 사태다, 어디는 또 노노 갈등이라더라 알맹이 빠진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시선 돌리기에 성공한 기업에서는 조용히 회장님들 월급이 올라가고 있다.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의 경우 전년 대비 33%, 18억 가까운 급여 인상으로 작년 한 해 연봉 71억 이상을 가져갔다.

오너의 월급에는 기업 운영 전반에 걸쳐 오너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노동의 대가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노사 갈등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공정거래법 운운하며 뒤로 물러나 있는 모양새를 보자면 해당 기업의 근로자가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이가 없네”는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유아인 분)가 하청업체 물류운송 직원인 배기사(정웅인 분)에게 하청업체의 임금체불 문제를 듣고 날리는 유명한 대사 아닌가. 밀린 금액이 생각보다 소액이라 우스워서인지 하여간 모든 상황에 심기가 불편한 조태오가 맷돌손잡이를 들어 배기사와 관객에게 본인의 어이없음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사회에 만연한 이 어이없음을 뿌리 뽑기 위해서 모든 기업은 위에서부터 기본을 벗어나지 않고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본인 할 일은 제대로 않고 가만히 앉아서 연봉 규모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기하려 한다면 이보다 불명예스럽고 민망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사전이 말해준다. 말을 사전적 지식으로만 쌓아 두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시사프라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