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문방송언론인협회장. 前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
한국신문방송언론인협회장. 前 청와대 춘추관 출입기자

최근 안진딜로이트 회계사들이 검찰에서 ‘삼성이 주문한 합병 비율에 맞춰 사실을 조작한 보고서를 만들어냈다’고 진술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나 결국 이익과 덩치가 2~3배 큰 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3배 낮게 평가돼 ‘1 대 0.35’의 비율로 합병이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합병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은 2015년 6월 중순 삼성 쪽으로부터 이 보고서를 전달받아 합병 비율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데 주요 자료로 활용했다. 삼성물산 주총(2015년 7월17일) 일주일 전 이뤄진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은 다른 주주들도 찬성하도록 하는 ‘동조 효과’를 끌어냈다.

그 결과, 2015년 합병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그룹 핵심인 삼성전자 지분율이 0.6%에 불과했지만, 본인이 최대주주(23.2%)인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이 이뤄져 지배력이 강화됐고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17%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는데, 기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를 자신의 직접 영향력 아래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부당한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얻게 된 금전적 이익이 2조~3조6천억원에 이르고, 전 국민에게서 닥닥 긁어모은 국민의 혈전용처, 국민연금은 3300억~6천억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은 또다시 신뢰를 추락시키며 누리꾼들의 썰을 빌리자면 소위 사기꾼 반열 꼭두에 올라섰다.

이쯤되면 재벌이란 다 이런건지! 외국도 사례가 있는지 등 궁금증이 생긴다.
왜 개인이 기업의 지배력과 영향력, 즉 권력에 눈이 멀어 국민의 고충을 가중시키는가 따져볼 일이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소유구조는 총수의 낮은 지분율, 총수 일가 및 계열사 등을 합친 높은 내부지분율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소유구조를 바탕으로 총수에 의한 그룹 전체의 완전한 지배체제가 운영돼 왔다. 

해외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소유구조와 그에 따른 지배구조는 매우 전근대적이고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을 쏟아내 왔다.

그러나 그룹식의 출자관계를 인정하는 국가가 우리나라말고도 많이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 동아시아, 남미 등에 기업그룹 혹은 재벌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기업조직이 다수 존재하는 것을 들수 있다. 

미국에도 하나의 기업이 다각화, 신사업진출, M&A 등을 통해 여러개의 기업을 산하에 두고 있는 복합기업이 적지 않다. 최근 과거사 부인, 제국주의 망령의 부활로 악의 축으로 떠오르는 일본의 경우도 과거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재벌이 있었다가 전후 해체됐지만 여전히 기업그룹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전쟁 전의 재벌계가 6개 기업집단으로 바뀌어 일본경제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고 도요타, 마쓰시타와 같은 신흥기업들이 산하 계열 및 하청업체를 하나로 묶어 독립계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섬나라 인간형 원숭이 집단의 기업그룹이 우리와 다른 점은 기업그룹의 정점에 전체 그룹경영을 좌지우지하는 특정 소유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존재하는 경우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상징적 역할을 하거나 특정 계열사의 CEO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특정 소유주가 있고 큰 영향력을 갖는 경우도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대표도기도 하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몇 대째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해 가족경영을 하고 있으며 발렌베리그룹의 계열사들이 스웨덴 경제의 선두에서 척추를 담당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사회공헌으로 인해 마치 국영기업처럼 대우하며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그룹체제 또는 계열사간 출자관계가 모두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첫째, 자신이나 지지세력의 이해득실 이외에 다른 이해관계자를 얼마나 배려하고 공존하게 할 수 있는가의 여부. 둘째,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해 기업을 얼마나 잘되게 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재벌그룹의 총수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그룹 전체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계속해서 기업을 성장시킨다면 굳이 재벌식 소유구조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총수가 기업가치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권력만 탐한다면 기업성과는 저하되고 폐쇄적인 지배구조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기업이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헌 역할도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을 재벌그룹의 소유지배구조에 적용해 보면 재벌찬양론이나 재벌해체론과 같은 양극단이 아닌 상생의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기업이 초기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한 공로가 없는것은 아니다. 

물론 부의 생성과정에서 집권세력의 국가사업 지명, 탈세와 문어발식 기업확장의 필요에 따른 정경유착 등 부작용과 비리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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