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훈 칼럼] 겸양지덕
[안성훈 칼럼] 겸양지덕
  • 안성훈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3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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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훈 카이스트 총동문회 이사
안성훈 카이스트 총동문회 이사

우리 선조들은 100% 채우기를 꺼려 하였다. 어느 정도 선에서 부족한 듯 멈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모든 일은 극에 달하면 다시 기울게 되어 있다.

예전 이조판서를 하던 '안당'이라는 분이 있었다. 아들이 3명 있었는데 한 해에 모두 급제를 했다. 총 33인을 뽑는 과거에 한 집에서 세명이 나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고 최대의 경사였다. 사람들의 하례가 줄을 이으니 그 분이 말했다.

"이것은 경사스런 일이 아니다. 필히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안당은 조광조를 천거하여 관직에 등용한 사람이다. 그가 한때 실세가 되며 안당의 권세도 하늘에 다았다. 여기에 아들 삼형제는 동시에 과거에 급제한 것이다. 이어 다시 좌의정에 올랐다. 부귀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예기치 못한 불행이 시작된다.

이듬해 안당의 처인 정경부인이 사망했다. 이때 부조금을 받은 명부를 이 집에 기거하던 송사련이 조작을 하여 임금에게 역모의 증거라며 밀고를 하였다. 송사련은 안당 첩실 딸이 출가하여 낳은 아들이다. 즉 외손자이다.

아들 삼형제는 효수되어 저자거리에 목이 걸리고 안당도 처형된다. 그 재산과 노비는 모두 송사련에게 주어진다. 30년에 걸쳐 송사련은 부귀를 누린다.

이후 간신히 살아 남은 안당의 후손 하나가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했다. 임금이 어전에서 소원 하나를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 주겠다 한다. 이에 피눈물로 호소하여 안당의 억울함이 밝혀졌다.

이번에는 송사련의 목이 밖에 걸렸다. 일장춘몽의 영화이다.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회복되었지만 다 죽고 난 이후이다.

모든 일은 극에 달하면 음과 양이 바뀐다. 예전 선조들이 이를 경계한 것이다.

요즘 새로운 내각이 발표되며 조국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내정에 대하여 시끄럽다. 이제 청문회가 진행될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겸양지덕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극을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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