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격돌] 대한민국 국민들의 극일(克日) 의지
[한·일 격돌] 대한민국 국민들의 극일(克日) 의지
  • 한상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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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전체적으로 경제·안보·문화 협력이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심각하게 악화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파국을 맞고 있다.

일본이 역사·정치 및 안보 등의 현안을 ‘백색국가’(전략물자 수출심사 간소화 대상국) 배제로 무역전쟁으로까지 확대한 조치에 대해 국민 여론은 들끓었고, 우리는 불매운동,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GSOMIA) 연장종료 등으로 맞불을 놓았다.

일본의 일방적 수출규제는 제2의 침략전쟁이다. 경제 무기를 앞세워 한국 정부에 굴복을 강요하고 있는 일본 아베 정권에 맞서 ‘NO 아베’ 운동이 시민·상인·농민을 가리지 않고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과의 전쟁을 한다면 이겨야 한다. 일본을 싫어하는 국민 정서와 역사 인식 때문에라도 일치단결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려되는 것은 '적전분열' 우리끼리 싸우고 탓하는 이전투구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당위론에 상황을 잘 알아야겠고, 일본과 맞설 수 있는 내부 동력을 모아, 껴안고 설득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겠다.

한·일 갈등 초기 한국의 대처는 평균점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자유무역 질서’에 반하는 행위임을 국제사회에 환기시키며 명분을 쌓았고, 한편으로 대화하려는 자세를 견지했다. 시민들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및 무역 분야에서 찬란한 금자탑을 쌓았다. 조선·석유화학·자동차·철강은 물론 ‘반도체 코리아’로 우뚝 세우고,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키웠다. 우리로서는 엄청난 쾌거였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과 함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국력이 갈수록 신장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한 측면이 크다. 아베 정부는 ‘얕은 수’를 철회하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에 즉각 나서야 한다.

어쩌면 이번을 계기로 우리는 주요 산업 분야에서 ‘경제적 독립’을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분야에서 독립을 이뤄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21세기 ‘독립운동’은 국가적 산업 내실화 차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 정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달 14일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9월 3일까지 의견수렴을 했는데,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일본을 제외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자의적 보복 조치”라고 주장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일 경산성의 의견서에 대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은 국제수출통제체제 원칙에 어긋나게 수출 통제제도를 운용해 국제 공조가 어려운 나라를 대상으로 수출관리를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 것”이라는 반박 입장을 내놨다. 아베 정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대응이라고 본다.

아베 정부가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일본에 대한 백색국가 제외는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약 2주 뒤에 시행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앞으로 일본과 대등한 조건에서 협상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세계무역기구(WTO) 승소 전략과 우리 중소기업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경산성은 지난달 28일 우리 정부의 거듭된 수출규제 철회와 대화 요구를 거부한 채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시행을 강행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당시 일본 정부는 “안보상 수출관리 제도를 적절히 실시하는 데 필요한 운용 재검토일 뿐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청구권협정에 의해 문제가 전부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 역시 ‘청구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1991년 야나이 슌지 외무성 조약국장이 일본 의회에 출석해 ‘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했고, 이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것은 보복이 아니고, 우리 정부가 맞대응 차원에서 나선 것은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제외 조치는 역내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신들의 입장과 모순된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는 잘못된 전략선택을 하고 있다. ‘내로남불’이고, 이런 억지가 따로 없다.

지금 아베 총리는 일본 기업과 국제 분업을 해치지 않고는 한국에 피해를 줄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해, 일본 기업이 피해를 감내해야 할 대의명분을 제공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있다. 그의 선택지는 제한적이어서, 그 자신의 모순에 가두어 두면 된다.

한국 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아베의 주장은 일본 사법부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고 있다. 지금껏 일본 법원은 단 한 번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한일협정에 의해 소멸되었다고 판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 판결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중·일 공동성명에 의해 ‘중국인 피해자의 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일본은 대법원이 내린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 명령을 한국 정부가 해결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주권 국가의 사법부 판결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고, 민간 기업이 져야 할 배상 책임을 가로막는 일본 정부의 오만과 비상식은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배 36년의 과오를 망각한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수정주의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인권법에 큰 기여를 했다. 피해자들은 1992년 일본 야마구치 지방재판소에 제소한 것을 시작으로 포기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법원에서 문을 두드렸다. 그 결실로 식민지 강제노동의 불법성과 배상이라고 하는 중요한 성취를 이루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다. 한국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원폭 피해자, 사할린 강제 이주 피해자와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하나의 인권 문제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끈질기게 국제사회에 발신해야 한다.

한-일 갈등은 신자유주의 퇴행기의 경제 문제가 일본의 과거 역사 부정과 새로운 제국주의 모색, 그리고 동북아 안보체제의 재편과 뒤얽혀 있기 때문에 점점 더 꼬여갈 것 같다.

한·일 갈등은 우선 안보 논리, 즉 일본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를 배경으로 한다. 일본이 이를 진솔하게 반성했다면, 한-일 관계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왜 일본은 이에 대한 한국의 요구와 강제징용 배상을 거부하면서 경제 보복을 감행하는가?

또 한·일 갈등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한반도는 식민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남북 분단으로 다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한·미·일의 이른바 ‘해양세력’과 북·중·러의 ‘대륙세력’ 간 대립 구조가 있었다. 이 대립 관계는 1990년대 탈냉전으로 해소됐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는 지금도 잔존한다.

그리고 한·일 갈등은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자유무역을 강조하는 자본 논리에 따라 자본주의의 지구화를 촉진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자본 축적에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함에 따라, 일부 선진국들은 자국우선주의로 회귀하면서 국가 장벽을 다시 쌓고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지역에는 이 같은 3층위의 지정학적 단층들, 즉 일제의 영토 침탈과 식민 지배, 냉전체제에서의 해양·대륙세력 간 대립,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주의로의 회귀가 깔려 있다. 현재 이 단층들의 역동적 활성화로, 동북아 정치경제 질서는 극히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따른 한·일 갈등 와중에 삼성전자가 4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삼성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포럼(SFF) 2019 재팬' 행사를 열었다. 이날 삼성전자는 일본 수출규제의 주요 타깃 중 하나인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으로 만든 제품을 공개하는 등 '초격차' 반도체 기술력을 한껏 뽐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에서 수입해오던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물량 중 일부도 국산으로 대체했다. 이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제재로 인해 거래처 다변화 작업에 착수한 지 2개월여 만의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밖에도 LG디스플레이가 이미 불화수소를 공정에 투입한 데 이어 삼성디스플레이도 이달 중 테스트를 마치고 제품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또 SK하이닉스도 관계사가 개발한 국산 불화수소 투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등 소재 탈(脫)일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대일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7개 품목 중 6개는 국산화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이들 품목의 완전 국산화에는 최소 2~3년이 소요되는 만큼 양국 관계 개선에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 메모리 분야를 이미 석권한 삼성전자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에 올라서겠다는 '2030 반도체 비전'을 선포했다. 지난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삼성전자의 원대한 꿈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 부문에 한해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를 주장해 수입 농산물에 대한 고율관세 및 국내 농산물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 지급 등의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7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라”는 입장을 낸 뒤, 개도국 지위 계속 주장 여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에 따라 이미 타이완, 브라질,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5일 우리나라의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문제에 대해 “관계 부처와 다각적으로 신중히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서 개도국 지위를 계속 주장해도 ‘미국의 반감만 살 뿐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의 기준은 OECD 회원 혹은 가입 절차를 진행 중인 국가, G20 회원국, 세계은행 분류 고소득 국가, 세계 무역량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 등 네 가지 모두 해당하는 우리나라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은 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악재다. 성장 동력인 제조업에선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143개 제조기업 평균 가동률이 78.8%로 지난해보다 2.1%포인트 떨어졌고, 7월 국내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년 전보다 1.6% 하락했다.

미·중 무역 갈등은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경쟁인 만큼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정부는 상황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경제의 기초체력과 성장 탄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 차분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GSOMIA의 종결로 대응했다. 정부가 경제보복 대응책의 하나로 GSOMIA 종료를 밝힌 것은 명분에 맞고, 뒤틀린 외교안보 정책 기조를 재설정할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타당하다. 이에 대해 일본은 한국이 경제와 안보를 연계시키면서 역사를 바꿔 쓰려 한다고 비난했지만, 이 비난은 일본 자신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박근혜 정부 말기 국민적 공감대를 결여한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체결된 GSOMIA의 재연장 여부는 당면 한일관계 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안보의 중장기 전략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차원에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미국은 강화된 미·일 동맹 속에 한·미 동맹을 끌어들여 사실상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가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굴복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다.

이런 정지 작업을 거쳐 2016년 7월 한·미 당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주한미군 배치를 발표하고, 11월에는 GSOMIA를 체결한다. 미·일 동맹을 중심으로 한·미·일 군사 일체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정책은 아시아 재 균형 전략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름을 바꾼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며 앞으로도 일본의 체제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동맹이 될 수 없다. 일본 군대가 다시 한반도에 발을 내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진실 규명과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해결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가 아니며, 중국 봉쇄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미·일이 짠 2015년 체제로 급하게 들어갔다. 이런 ‘외교안보 적폐’는 대북 군사대결 우선론과 결합해 이후 적잖은 혼란과 갈등의 원인이 됐다.

위안부 합의 폐기에 이어 GSOMIA가 종료되면 2015년 체제 이전 상태로 반쯤 돌아가는 것과 같다. 어렵게 이 체제를 만든 미국이 ‘불만, 우려, 유감’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목적과 내용이 다르다. 미국으로선 한·미·일 군사·안보 일체화가 패권 유지·확장을 위해 효율적이겠지만,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17년 10월 ‘안보 3불’ 원칙을 밝힌 바 있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틀에서 보면 GSOMIA는 좋은 한·일 관계를 전제로 한 제한적 의미를 지닌다.

한·미 관계도 최근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하고 있다. 그 시작은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였다. 미국의 중재 등을 기다리던 우리 정부가 GSOMIA 종료를 결정하자 미국은 이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반복적으로 표출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주한 미국대사를 초치해 발언 자제를 당부했다.

8월 22일 한국 정부는 GSOMIA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GSOMIA는 국가 간에 안보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협정으로, 일본이 한국에 대한 불신을 공개화한 상황에서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 있다.

GSOMIA 종료결정에 대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사에 있어서 한·미·일 안보협력은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불편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문제는 사태가 이 상황까지 오게 방치한 미국 정부의 무책임이다.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수출규제 조치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막을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방관하고 결과적으로 불가피한 조치를 선택하게 된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모든 동맹은 상호간 안보적 이해관계에 따르는 것이며,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정책에 자동적·수동적으로 편입되는 존재가 아니며, 자국의 이해관계 관철을 위해서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의 방위비 분담을 넘어 전액을 부담할 경우 주한미군은 동맹을 위한 지원군이 아닌 용병으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재한다. 미국의 관료들이 GSOMIA 종료 결정을 두고 한국 최고지도자를 거론하며 '실망'과 '안보적 오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하는 것은 동맹을 '실망'시키는 외교적 결례에 해당한다.

한·미 동맹은 오랫동안 양국의 건설적인 관계에 기여해왔으며,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을 고려했을 때 향후에도 상당기간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한국의 발전에 기여한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이 방치될 경우 미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신뢰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8월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평택기지 등으로 이전 완료했거나 이전 예정인 총 26개 미군기지에 대한 조기 반환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2003년 5월 30일 한미 양국은 주둔군 지위협정(SOFA) 특별위원회를 열고 미군기지의 환경오염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환경정화책임을 미국이 부담하게 됐고, 반환이 예정된 80곳 가운데 아직 환수하지 못한 26곳을 조속히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전작권 이행 상황을 평가·점검해 구체적인 전환 시기를 판단”하기로 한 결정도 ‘원활한 전환’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미국은 반환하고 남은 26개기지 중 19곳은 반환절차 개시를 협의 중이지만, 7곳에 대해서는 반환절차 개시 협의조차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원 원주시 태장동일대 34만 4332㎡ 규모의 ‘캠프롱’은 2010년 6월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한 뒤 부지가 9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 기지는 2013년 원주시가 국방부와 토지매입 협약을 체결, 3년 뒤 665억 원을 완납했음에도 토지를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용산기지 주변에서 드러난 오염 실태는 녹사평역과 남영동 지역의 기름 유출 사고 등을 통해 일부 밝혀졌다. 2001년 1월 녹사평역의 집수정 등에서 지하수 오염이 발견되었고, 서울시는 유류 성분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2018년까지 5년간 한국이 부담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연간 약 8억 달러다. 이것이 트럼프의 과도한 요구에 의해 2019년 10억 달러(약 1조 389억 원)가 됐다. 이 금액을 내년에는 50억 달러(약 6조 300억 원)로 인상하겠다는 게 트럼프의 목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의회 일반회계감사국의 보고서에서는 10개 기지의 환경정화 비용으로 수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시점은 근 30년 전인 1991년이라, 용산 기지를 비롯한 24곳의 환경정화 비용이 막대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환경오염책임을 제대로 따지게 되면, 해마다 더 많은 방위비를 한국에서 받아내려는 트럼프의 의욕이 어느 정도 꺾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서독(독일) 주둔 미군이 일으킨 환경오염에 대한 정화 비용이 30억 달러로 추산됐다'는 사실이 1990년 12월 발표된 미국 정부의 보고서에 담겼다. 의회 보고서에서는 한국·일본·필리핀·독일·영국·이탈리아 기지에 대해 수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측한 데 비해, 정부 보고서에서는 서독 기지에 대해서만 30억 달러가 들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이 금액이 30년 전 물가에 근거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군의 독도 훈련과 GSOMIA 파기 문제에 간섭하는 한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도 평소답지 않은 반응을 보인다. 뉴욕 현지 시각으로 8월 30일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미군기지 반환 요청에 관한 질문을 받은 트럼프는 "글쎄, 우리는 한국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면서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70년간 주한미군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고 군부대를 오염시켜왔다. 그로 인한 환경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제대로 청구하게 되면, 트럼프가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몇 십 억 달러가 오히려 적게 보일 수도 있다. 수시로 주판  알을 튕기는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어떤 계산이 전개되고 있을지 궁금하다.

더구나 미군기지 반환은 지금 시작해도 마무리되기까지 한참 걸린다. 정부가 이들 기지의 오염을 먼저 해결한 뒤 그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시켜 상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미국의 미련이 되살아난 시점은 1990년대 말이었다. 미국이 MD를 군사패권전략의 핵심으로 삼으면서 효과적인 MD를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과 일본의 선택은 엇갈렸다. 일본은 MD에 참여키로 한 반면에 김대중 정부는 불참을 선언했다.

김대중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부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대안으로 외교협력을 강조했다. 포용정책에 기반을 둔 한미일의 대북정책을 고안했고, 중국 및 러시아도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도 이와 흡사했다.

2009년 들어 새롭게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보다는 한미일 군사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여기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에 허덕이고 2008년 금융위기에 휩싸이던 와중에 중국이 급부상을 한 것이 주효했다.

사드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중국은 관광과 투자, 인적 교류 등 전 방위 차원에서 한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한 바 있다. 그 탓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은 급감했으며, 롯데마트의 철수 등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직간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중국의 보복조치로 인한 피해의 여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에 대한 즉각적 공격이 가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아시아 배치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그 대상으로 한국이 포함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드체계가 방어무기인데 비해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공격무기라는 점에서 중국의 반발은 그 정도를 예상하기 어렵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군용기는 수시로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있으며, 올해 2월 23일에는 처음으로 독도와 울릉도 사이를 무단 진입했다. 7월 23일 중국은 러시아와 한반도 동해에서 사상 첫 공군 합동훈련을 실시했으며, 당시 러시아 정찰기는 2차례 독도 영공을 침범해 한국 전투기가 경고사격을 가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타국의 군용기가 한국의 영공을 무단 침입한 것은 최초의 일이지만, 러시아는 사과는 물론 납득할 만한 해명도 내놓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토대로 우리의 정책적 행보를 가속화해야 한다. 외교·안보에 있어서 한국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때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국익을 관철하는 입장에 양보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흔들리지 않는 한반도'의 초석이며,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곧 임기 후반을 맞이하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숨고르기 국면에 놓여 있다. 향후 대북·통일정책은 단기적 성과주의를 지양하고, 중장기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유엔군사령부의 지위와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이 노정되고 있다. 지난달 ‘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 때 미국 측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뒤 유엔군사령관의 지위에 대한 논의를 요청했다. 한국은 ‘유사시 미군이 한국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군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므로 작전 개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결국 당시 훈련의 일부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작권 전환에 대비해 한국군이 개발하고 있는 지휘·통제·통신체계(C4I)를 미군이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C4I는 군의 ‘두뇌와 신경’이다. 우리는 양국군이 별도로 운용하는 지휘통신망을 자체 개발한 한미 연합 작전용 지휘통제 네트워크 연합지휘통제체계(AKJCCS)를 연동 프로그램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시스템의 불안정성 등을 문제 삼아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난해엔 유엔사 부사령관을 미군이 아닌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장성으로 보임하는 등 다국적군 체제로 재편하려는 시도를 했다.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주도권을 유지하는 통로로 미군이 유엔사를 활용하려 한다면 그건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한국군의 전력과 위상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미군은 전작권 전환과 함께 한국군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게 바람직하다.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를 시작한 지 두 달이 넘도록 대화를 거부한 채 일방적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양국 관계를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행동을 중단하고 양심적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충언에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정권의 속내는 이번 갈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을 털어내고, 한국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부터 외교청서의 한국 관련 기술을 단계적으로 격하시켜온 것을 보면 꽤 오래전부터 이런 그림을 그려온 것 같다. 북한을 대체할 외부위협으로 규정하는 것도 염두에 둔 듯하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장기집권의 피로감을 극복하고 일본인들에게 내셔널리즘의 옷을 입혀 헌법 개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부품·소재’로 한국이 동원되는 인상이 짙다.

일본 젊은이들은 슬픈 역사를 모른다.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한편 일본은 20~30년 가까이 경제가 호전되지 않고 있다. 소위 ‘성장하는 일본’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강한 발언을 하는 중국이나 한국에 대하여 ‘나는 강한 일본을 만들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정치인이 선호되는풍조가 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독도를 전쟁으로 되찾자”는 마루야마 호다카 중의원 의원의 지난달 31일 망언에 대해 “개별 의원 발언에 대해 코멘트를 삼가고 싶다”고 답했다. 5월 같은 의원이 러시아 북방 영토를 전쟁으로 되찾자고 했을 때 “정부 입장과 전혀 다르다”며 펄쩍 뛴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본 고노 다로 외무상이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무례하다’고 면박한 것은 압권이다. 강제징용 가해 기업으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현금화에 착수하기 전에 일본이 보복조치를 취한 것도 신중하다는 평소 이미지와 딴판이다.

판문점의 남·북·미 정상 회동에 세계의 시선이 쏠린 다음날 수출규제 카드를 던진 것은 ‘잔치에 재 뿌리자’는 심산이었을까. 국제사회로부터는 ‘오모테나시(진심 어린 환대)’라며 상찬 받는 일본이 유독 한국에는 ‘다테마에(建前·표면적인 태도)’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며 달려드는 ‘다중인격’을 노출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가 4일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승천기(욱일기)’의 경기장 내 반입을 허용키로 했다. 조직위는 앞서 욱일기를 떠올리는 패럴림픽 메달을 공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등 침략전쟁 때마다 일본 ‘황군’이 최전면에 내세웠던 전범기다.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이다.

우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외교부는 욱일기가 일제 군국주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도쿄올림픽 기간 전후 경기장 반입과 욱일기를 활용한 응원 행위를 금지할 것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조직위에 촉구한 바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욱일기 사용 자제를 자국 관광객 안전수칙에 넣었던 것이 일본 정부다. 한국·중국 등 태평양전쟁과 강제식민 피해를 입은 동아시아 국가들에 사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올림픽 경기장을 욱일기로 채우겠다니, 일본은 진정 ‘정상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조직위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인 양 표기한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축구대표팀 박종우 선수의 ‘독도 세리머니’를 정치적 표현으로 지적한 것이 바로 IOC다. 욱일기 응원과 욱일기 메달 수여를 허용할 경우 ‘수상 거부’ ‘관중 충돌’ 등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본은 올림픽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 욱일기 사용은 과거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와 고통만 줄 뿐이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 우려부터 해소하는 것이 지금 일본이 해야 할 일이다.

아베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가운데, 수출규제 철회와 양국 간 대화를 촉구하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아베 정부의 태도 변화를 바란다.

지난 31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에서 열린 ‘한국이 적인가―긴급집회’에 350여명의 일본인이 참석했다. 이 집회는 지난 7월 말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서명운동을 벌인 일본의 지식인들이 마련한 행사다.

이타가키 유조 도쿄대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의 조치는 한국을 차별하면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아 온 자세가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2차 세계대전 가해국 중 뒤처리가 전혀 안 된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비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아베 총리의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향해 가는 곳은 평화국가 일본의 종말”이라고 경고했다.

일본 언론들이 서명운동 소식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통해 확산돼 30일까지 26만여 명이 서명운동 사이트를 방문했고 9300여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은 “언뜻 여론조사만 보면 일본 여론이 아베 총리의 한국에 대한 조치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목소리를 들어내지 않은 많은 사람이 옳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엔 일본변호사연합회 인권위원회 소속 변호사 6명이 <징용공 재판과 일한청구권 협정―한국 대법원 판결을 읽고 풀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진실을 알리려고 책을 썼다’는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는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한-일 갈등이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이 시작한 분쟁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 정부가 그렇게 선동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 “국가 대 국가가 대립하는 정치적 사안이 아닌 25년이나 재판을 해온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이어진 일본 민주당 정권의 첫 총리였던 하토야마 전 총리는 2015년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의 묵념을 하는 등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지론으로 피력해왔다. 그는 ‘한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일 관계가 충돌하는 근본적 원인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있다’는 게 하토야마 전 총리의 기본 입장이다. 최근 트위터에도 “강제징용 문제를 계기로 한일 대립이 최악의 전개로 흘러갔다. 그 원점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어 고통을 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하토야마 유키오(72ㆍ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는 29일 ‘미국의 중재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및 우리 정부의 GSOMIA 종료 결정을 순차적으로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일 관계 악화를 촉발시킨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의 철회가 우선돼야 한다.

최근 잇따른 한국대사관 협박 사건 배경에는 일본 내 ‘혐한 열풍’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 심화와 맞물려 일본에서는 ‘혐한 콘텐츠’가 넘쳐난다. 출판계에서는 혐한 책이 판매 보증 수표라는 말이 돌 정도라고 한다. 일본에 이런 기류가 형성되는 건 퇴행적인 현상으로, 몹시 우려스럽다. 그래도 이에 저항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는 데서 희망을 본다.

며칠 전 <주간 포스트>라는 주간지는 ‘한국 따위 필요 없다’는 특집 기사에서 한국을 원색적으로 비방했는데, 몇몇 유명 작가들이 “혐오를 부추기는 출판사와 절연 하겠다”며 비판 대열에 동참했다고 한다.

최근 일본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총탄이 동봉된 협박편지가 배달됐다고 한다. 익명의 편지에는 “라이플(소총)을 몇 정 가지고 있다. 한국인을 노리고 있다. 한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등 생명을 위협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일 경제 갈등이 심해지는 와중에 도쿄 한국대사관에 협박편지가 온 건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일본에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 대한 위협과 다를 게 없다. 일본 정부는 외교 사절의 안전 보장을 규정한 국제 협약에 따라 철저히 수사해서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대한 위해나 협박은 이게 처음이 아니다. 이틀 전엔 60대 일본 우익단체 간부가 대사관 벽에 설치된 우편함을 주먹으로 쳐서 찌그러뜨렸다가 체포됐다. 3월에도 20대 남성이 대사관 우편함을 파손한 일이 발생했다.

외교 사절과 공관에 대한 안전 보장은 1961년 4월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라 접수국에 부여된 의무다. 협약은 22조에서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다. 접수국은 어떠한 침입이나 손해에 대해서도 공관 지역을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29조에선 “접수국은 외교관의 신체, 자유 또는 품위에 대한 어떠한 침해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간토(關東)지역에서 대지진이 5분 간격으로 세 차례 발생했다. 당시 집들은 대부분 목조로, 점심 식사 준비를 하던 시간 불은 급속하게 번져나갔다. 집을 잃은 수 만 명의 요코하마 시민들은 부두에 있는 세관 주위 들판에서 노숙을 했다. 입헌노동당 총리라는 야마구치 마사노리(山口正憲)가 '요코하마 지진재해 구호단'(구호단)을 급거 조직해 세관창고를 습격해 털고, 요코하마 시내 상점들을 약탈했다.

구호단이 "사회주의자들이 조선인과 손잡고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유언비어를 희생양으로 뒤집어씌우려고 만들었고, 도쿄로 퍼졌으며 언론매체는 이를 여과 없이 간토 전역으로 전파했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발령받아 조선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자였던 내무대신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郞)는 이 유언비어를 간토 지역 내 경찰서와 경비대에 내보내면서 적당한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고, "도쿄 부근의 진재(震災)를 이용해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 등을 통해 불령(不逞)한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엄중히 단속하라."고 전국에 타전했다.

도쿄의 불탄 자취 위에서 '조선인 사냥'이 시작됐다. 자경단은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위해 발음이 어려운 일본어 문장을 말하게 했다. "十五円五十錢(쥬고엔 고주센·15엔 50전)"이다. 이 발음이 조선인의 생사를 결정했다. 6661명의 조선인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다. 도쿄를 흐르는 강물이 핏빛이 될 정도였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 사망자를 233명으로 축소해 발표했다.

대학살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됐다. 이런 야만적인 나라와 어떻게 정상적 국교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일본 주재 각국 대사·공사의 공식 항의문이 외무성에 전달됐다. 외무성은 당황했다. 외국으로부터 구호물자도 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에 조선인 학살은 금지됐다.

지난 1일 간토대지진 추도제가 도쿄의 한 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아베 지지층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맞불 집회를 열어 추도제를 방해했다. 이날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역대 도쿄도지사들 대부분이 보내온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벌써 3년째다.

비슷한 시각,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2차 세계대전 시작 80주년 기념일에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는 나치의 만행에 거듭 용서를 구하면서 "역사가 지어준 책임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독일이 과거를 진솔하게 반성해 신뢰받는 나라가 됐다는 것을 일본은 깊이 새겨야 한다”고 말했지만, 일본이 여전히 과거와 정직하게 대면하는 독일로부터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다.

96년 전 일본은 혐한 유언비어를 조장해 광기어린 한국인 살육을 저질렀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학살은 없었다"면서 사술(邪術)로 역사의 진실을 무너뜨리려는 목소리가 거듭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침묵하면서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역사를 정직하게 직시해야 한다. 피하지 말고 마주하면서 과거 만행을 사죄해야한다. 사죄야말로 화해의 전제조건이다. 없던 일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

과거사를 마주하는 일본과 독일의 태도가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대비됐다. 폴란드 비엘룬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기습으로 2차 대전이 시작된 곳이다. 당시 도심의 75%가량이 파괴되고 민간인 1,200여명을 포함해 이후 5년간 폴란드에서만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달하는 600만 명이상이 희생됐다.

이날 공습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에 헌화하고 폭격에서 살아남은 피해자들을 만나서도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독일의 압제에 희생된 폴란드인들을 기리며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 하며,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이를 “도덕적 배상”이라 평가했다. 진심어린 사과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마음을 열고 화해하는 효과를 낳음을 보여준다. 과거사를 직시하고 사죄하는 태도가 양국 간 우정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지난달 이탈리아에서 열린 나치의 민간인 학살 추모행사에 참석해서는 “독일의 책임은 종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를 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독일도 처음에는 전후 국가배상에 소극적이었지만 피침략 국가와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독일의 책임은 종결되지 않는다’는 겸허한 입장으로 바뀌었다.

독일은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무릎을 꿇는 등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치의 만행을 반성해 왔다. 또 1952년 이후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피해자들에게 총 800억 달러(약 97조원)를 배상한 데 이어 최근에도 생존자 수천 명에게 매달 수백 유로를 추가 지원키로 하는 등 위로와 배상에서 성의를 다해 왔다.

주목할 것은 2000년 들어 독일 정부와 기업이 각각 50억 마르크씩 출연해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만들어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일제 식민통치가 없었더라면 독자적인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남미에서 한때 바람을 일으킨 종속이론에 의하면, 주변 국가가 중심 국가에 예속되어 원료 공급지와 소비 시장 역할에 한정되기 때문에 산업 고도화의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고 주장한다.

중심 국가인 종주국 일본은 당연히 주변국인 식민지 조선을 일본 입맛에 맞게 요리했을 것이다. 조선이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하지 않고 일본의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목표 함수에 맞춘 최적화를 추구했을 것이기에, 일본의 최선과 조선의 차선 이하가 조합된 최적해를 정책 목표로 선택했을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1910년 조선과 1945년 조선을 단순 비교하여 그 차이가 식민지배의 성과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판단 기준은 조선이 독자적 근대화를 추구했을 경우의 1945년 조선과 해방된 조선을 비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뿌리는 정한론이다. 야만 상태에 있는 조선을 정복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삼아야 일본의 미래가 열린다는 정한론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조선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한 존재이기에 일본이 근대화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인데, 과연 조선이 그렇게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일본 덕에 근대화되었으니 고마운 줄 알라'는 주장을 펴는 것은 정한론 추종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임을 깨닫고, 조선이 일본에 납치되어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왜곡된 근대화의 길을 강요받은 것에 대해 진솔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경성을 워싱턴과 같은 근대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워싱턴과 같은 도로 체계를 설계한 흔적이 바로 서울시청 앞의 방사형 도로이다. 경성시내의 전차가 철도와 연계되어 운용될 수 있도록 당대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이식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이 중요한 순간에 조선을 납치한 것이 일본제국주의인 것이다.

<반일 종족주의>의 프롤로그를 쓴 이영훈 전 교수는 '일본보다 높게 나오는 근래 한국의 범죄 수치'를 거론하며 한국인의 거짓말 습성을 문제 삼았지만, 간단히 논파되는 '허언'이었다. 한일 간 범죄 통계를 잘못 비교하며 한국인의 국민성을 폄하하는 유언비어들까지 짚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영훈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위안부 모두 자발적인 것이었고 일제침탈 역사는 우리 교과서의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일본과 비교하면서 사기, 위증, 무고가 수백 배 많다는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는데, YTN 취재팀이 확인 결과 억지주장이었다.

2014년에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 일본의 172배라고 쓰여 있는데, 인구수를 고려하면 1인당 위증죄가 일본의 430배 이상이라고 얘기를 한다. 무고는 일본의 500배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위증은 허위를 증언한 것이고 무고는 거짓으로 고소 고발한 것, 사기는 남을 속이는 일이다.

나라별 범죄 통계를 이렇게 비교해서는 절대 안 된다.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라는 주장의 근거는 범죄 발생 건수인데, 나라별 사법 시스템이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일본은 수사기관이 고소고발을 쉽게 접수하지 않는다. 신청 받는 고소 고발 건이 적으니 당연히 위증, 무고, 그리고 사기 발생 건수도 낮게 잡히는 건데, 국가별 범죄 비교는 살인사건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의미 없다는 게 국제적으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법 제도적인 차이도 있는데, 권리의식이 강한 한국인과 체제에 순응하는 일본인이라는 문화의 차이도 있다.

나라별 단순 범죄 발생 수치 비교의 맹점을 보여주는 게 따로 있는데, 다른 범죄를 비교했을 때 일본의 절도 발생은 매년 우리나라의 3배 이상이다. 매년 발생하는 일본의 절도 건수, 우리보다 무려 3배 이상 많다. 인구수를 고려해도 우리보다 굉장히 더 많이 발생을 한다. 그 똑같은 논리를 편다면 ‘일본은 절도의 나라’가 된다.

정확히 100년 전에 똑같은 주장이 있었다. 1919년 3월 21일 그리고 22일 날짜에 영어로 된 기사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그러니까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던 신문사 ‘서울프레스’라는 영자 신문사의 기사로, 당시 2개의 기사를 확인했다.

평균적인 한국인이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악명 높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소문을 날조하고 퍼트리는 데 능숙하다는 내용의 기사인데, 당시 3.1운동이 발생을 했고, 일본의 조선민중 학살 사실이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런 사실을 거짓말로 만들기 위해 이런 기사를 내고, 여론전을 펼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부끄럽고 잔인한 잘못을 감추기 위해 한국인은 거짓말쟁이고, 거짓말하는 문화가 퍼져 있다는 말을 퍼트리기 시작했는데, 이 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런 식민사관에서 비롯한 말도 안 되는 주장, 벗어나야 한다. 거짓말이 한국의 문화다, 이런 잘못된 주장들은 개인 저자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문화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든다.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에서 한국인이 일본을 원수로 보고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내 퍼뜨리는 집단 심성을 가리켰다. 이는 기존의 반일 감정에 덧붙여 거짓말을 지어내 퍼뜨린다. 일본 정부의 국가책임을 밝힌 선행연구의 많은 부분을 “거짓말”로 일축하는 것은 매우 당혹스럽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도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팀이 번역·해설한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를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 센터’와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 센터’ 누리집에 게시한 “문옥주 할머니는 버마에서 부자가 되었다?”라는 글로 검토해 봐야 한다.

2007년 한국 정부가 군인 군속 공탁금과 관련해서 1엔당 2천원으로 환산해서 위로금을 지급한 적이 있다. 이 비율을 적용해보면, 문옥주 할머니 저축액은 지금 가치론 4천 엔, 즉 고작 4만원 정도 밖에 안 된다. 처음엔 점령지의 통화가 엔과 등가로 설정됐지만, 버마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인플레가 심해지자 일본 정부는 환전 차액을 실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45년 외자금고를 설립했다. 버마에서 저금해 많은 돈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엔으로 교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전 교수는 영화 <귀향>에서 일본군 헌병이 소녀를 끌고 가는 장면이나, 조정래 소설 <아리랑>에서 위안부를 징발해 가는 대목을 두고 “더러운 종족주의의 표본”이라고 분노를 표한다. 그리하여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우익이 ‘위안부’ 강제 연행을 증명하는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은 분명히 있었다.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강제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을 말한다. 군인이 머리채를 잡아끌고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중일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38년 일본 육군성은 일본군 위안소 설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위안부 ‘모집’에 관한 방침을 내렸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는 민족차별, 여성차별, 계급차별의 문제이면서 여성에 대한 국가범죄이자 전쟁범죄이다. 제국의 식민지 지배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내외 시민단체,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는 이유다. 그렇기에 여성에 대한 국가범죄, 국가책임, 전쟁범죄와 같은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를 ‘단지 견해 차이’라는 말로 덮어두고 넘어갈 순 없다.

서울에 주재하는 외신기자들 300여명으로 구성된 서울외신기자클럽은 10일 오후 일본군 성노예화 사실을 부정해 친일 논란을 부추긴 <반일 종족주의>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현 이승만학당 교장)를 초청해 간담회를 연다고 한다.

친일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의 해명에 그치거나 일방적인 주장을 전개할 자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이 전 교수의 편향된 시각이 국외로 확산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조은(동국대)의 탄식처럼 ‘반일 종족주의’란 ‘타자에 대한 상상력’ 결핍,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렇기에 ‘반일 종족주의’가 진정 새로운 지점은, 홍준표 전 대표조차 외면할 수밖에 없는 ‘적나라함’ 정도다.

이영훈(서울대)이 썼던 ‘반일 종족주의’는 ‘퉁 치기’로 얘기하는 게 좋겠다. 세월호 참사 피해를 보상금으로 퉁 치자던 온갖 이야기들, 이런저런 모욕을 다 쏟아내고도 그걸 고용과 월급으로 퉁 치던 오너 일가의 갑 질 등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개별 피해자들의 구체적 증언은 외면하면서 ‘실증’이란 이름으로 공식문헌, 통계, 숫자를 내세우는 이유는 여기 있다. 퉁 치기 위한 전제조건, 그러니까 ‘그 정도로’라 말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궁극적 질문은, 인간 삶을 통계 하나로 재조립할 수 있는가,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과 그게 전부라는 건 엄연히 다르다. 그 간격을 조심스레 더듬지 않고 남들을 무슨 미개인 취급하듯 반일 종족주의라 멸시한다면, 혹시 타자에 대한 상상력이 극심하게 부족한 세계관이다.

친일파냐 아니냐는 식의 논쟁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왜 이런 주장이 계속 반복되는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당위, 즉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당연히 유익하고 옳다.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의 오천년 역사가 이 ‘옳음’을 증거 한다.

잔학한 일제로부터의 독립이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눈부신 민주화의 결과도 위대한 선각자들이 피땀으로 노력한 것과, 전혀 이해되지 않고 무모해 보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열매다.

2017년 7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우익 단체가 ‘헤이트 스피치’를 예고하자 수많은 일본 시민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우익 단체 회원들은 채 몇 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8월 초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에서는 소녀상에 종이 봉지를 씌워 모욕하는 이가 나타났지만, 다른 시민들이 바로 제지하고 나섰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 저주와 모욕을 하지 않은 것은 국가 간 관계 이전에 기본적인 양식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 시민 대부분은 이런 양식을 갖춘 이들이라고 믿고 있다. 혐오가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는 날을 보고 싶다.

한·일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8월 29일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시바야마 마사히코 문부과학상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양자회의에서 문화교류를 지속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문화 교류·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문체부는 “양국 장관이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계기로 시작한 ‘한·일 축제 한마당’ 등 문화교류를 통한 지속적인 교류·협력의 뜻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30일에는 박 장관과 시바야마 문부상, 뤄수강 중국 문화여유부장이 제11회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를 열고, 향후 10년을 내다보며 동북아 지역에서의 문화 분야 교류·협력을 확대·발전해 나가자고 뜻을 모았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양국 갈등이 격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양국 문화장관이 교류·협력의 중요성에 공감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일본은 좋건 싫건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언제까지 등을 돌린 채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치·외교적 갈등과 별개로 비정치적 교류를 이어가는 것은 ‘화해의 마중물’을 축적하는 의미가 있다.

그간 한국 시민사회는 한·일 갈등에 대해 원숙하고 현명하게 대응해 왔다. 서울 중구청이 내걸었던 ‘노 저팬’ 배너가 시민들의 지적으로 내려졌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일본영화 상영을 취소하자는 시의회 주장도 기각됐다.

일부 자치단체와 정치권의 경직된 태도가 자칫 일본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우려가 있음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한·일 갈등에 맞서 양국 시민단체들 간의 연대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마음 든든하다.

9월1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일 축제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9월 28~29일 이틀간은 도쿄 도심에서 ‘일·한 축제 한마당’이 열린다. 올해로 15번째를 맞는 한·일 축제 한마당은 문화교류는 물론 시민·청소년·스포츠·지방자치단체 교류를 통해 양국의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해 왔다. 축제가 열리는 것 자체가 이채로울 정도로 엄혹한 정세다. 행사를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한국 시민들의 아량과 포용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일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정경분리'원칙에 따라 민간교류를 통한 대화의 물꼬는 이어왔다. 지금도 민간교류의 지속이 관계 개선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서로가 '보이콧'하는 강대 강 대치국면으로는한일 간 갈등 해소가 쉽지 않다. 결국 물밑 접촉을 통한 대화가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당장은 '정면대치'보다는 문화교류 등의 다중채널을 이용하는 것이 한 방편일 수 있다.

오늘 국회에서 조국 후보자 인사 청문회가 개최되는데 관련 이슈들을 제쳐두고 ‘한·일 격돌’을 논하는 게 한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일본이 도발한 경제 전쟁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국회에 보낸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 청문 요청안에서 “학문적 역량과 원활한 소통 능력으로 법무행정의 혁신과 검찰개혁 과제를 마무리하면서 법치를 통해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보수 정권의 반칙과 비리에 분개하며 숱한 독설과 냉소를 뱉었던 그이기에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조 후보자와 가족에게 제기된 법적ㆍ도덕적 의혹은 사모펀드와 논문ㆍ장학금 등이다. 조 후보자는 20여일의 여론 검증 과정에서 숱한 ‘내로남불’ 언행이 드러나 “죄송하다”를 연발해야 했고, 그의 주변엔 본인조차 “의아하다”고 하는 사안도 적잖았다. 특히 공정의 대명사가 돼야 할 대학ᆞ 대학원 입시ㆍ장학금 문제에서 조 후보자 딸이 특혜와 반칙으로 얼룩진 ‘금수저 특급열차’를 탄 탓에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학가 촛불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극일(克日)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중앙회 한상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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