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격돌 설명서 친일잔재 청산
한·일 격돌 설명서 친일잔재 청산
  • 한상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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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일갈했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이 지난 지금도 온 국민이 ‘친일잔재 청산하자’는 제2 독립운동을 외치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대법원이 일본기업의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내렸고, 이에 반발한 일본 아베 정부가 지난 7월 對한국 경제도발을 감행했다. 일본과의 거리감은 나름 ‘애국심’으로 전환되어 ‘독립운동을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하겠다’는 결의가 대단했다. 

세달 여가 지난 지금 일본을 찾는 하늘 길이 닫혔고, 뱃길까지 뚝 끊겼다. 흥이 많은 우리 국민들이 즐겨 마셨던 일본맥주도 사실상 퇴출돼, 수입산 맥주 부동의 판매 1위였던 그들의 오만함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 어디에도 일본제품 불매운동 열기가 식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지 약 3주 만에 문재인 정부는 지난 18일 일본을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했다. 일본이 수십 년 넘도록 엄연한 진실 앞에서 역사 왜곡하는 처신을 보며,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국민이 보여준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아베 정부에게 ‘그릇된 역사 인식에서 나오는 왜곡된 주장을 하지 말 것’을,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게는 ‘일본에 기댄 개발도상국 당시 습성을 청산하라’는 분명하고 당연한 요구였다. 아울러 일제가 심어둔 ‘사쿠라(매국노·토착왜구)’에 철퇴를 가해 달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을 규제한 2개월간 일본 전체 수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월보다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7월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대한국 수출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규제 대상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이 크게 줄긴 했지만, 일본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은데다가 미중 무역 분쟁으로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일본의 3대 수출국 위치를 고수했다.

다만 한일 간 무역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일본으로의 관광 수요가 대폭 줄었고, 일본제품 불매운동도 이어지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양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점차 커질 전망이다. 

앞서 산업부는 ‘3대 품목이 한국의 전체 대일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계 분류상 1% 미만인데, 여기에는 다른 품목도 들어가 있어 실제로는 그보다 더 작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2라운드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사회 곳곳에 잔존하는 친일잔재 청산으로 이어져야한다. 우리 국민의 위대한 역사를 보면,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기업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친일잔재 청산작업은 훨씬 쉽게 완수할 수 있다.

"구역질나는 책"이라고 한 조국 법무부 장관의 평가가 '반일 종족주의' 책 판매에 톡톡히 일조했을 법하다. 한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10만부 넘게 팔려나갔다. 공저자 6인의 신상과 이들의 행태에 대한 보도와 분석도 줄을 잇는다. 

이 책은 한민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종족주의’라 부를 만큼 심각하니, 그 대안으로 시민의식과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한 근거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정당화한다. 

일본 식민지배 35년간의 수탈과 착취, 억압에 대한 통념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역사 교육이 지나치게 감정주의적이고 선동적으로 반일(反日) 정서를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일본 극우 세력, 혐한파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중국은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자, ‘일제 침략기 상하이에만 160곳 넘는 군 위안소가 운영됐다’며 ‘역사적 도전을 중단하라’고 일침을 놨다.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도 동북3성의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로,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을 우려하는 중국이 조선족 이탈과 국경선 분쟁을 막기 위해 만든 국가 전략으로, 대표적인 역사 왜곡 사례다.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은 고구려·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킴으로써 ‘조선족도 중국인’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은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대문짝만하게 표지 석까지 세우며, 윤동주 시인을 중국인 화하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윤동주가 '재외동포 시인'으로 수록됐다니, 우리 스스로 우리 역사를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세계 6대 제조·수출 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췄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수준의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에는 소홀한 결과다. 이제 더욱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하다. 

또 한·중·일 역사전쟁에 대비해 저명한 세계 학자들이 한국 역사를 연구하도록 국책사업으로 지원해야 한다. 일본은 이미 1960년대에 외국인 학자를 대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학 연구를 지원하며 지일파를 육성해 왔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위안부·강제징용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과 남의 나라 역사·인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되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아차 하면 눈 뜨고 우리 역사를 잃을 판이다. 힘없는 나라에 역사는 없다.

상지대 정대화 총장은 한국 정치 갈등 구조와 역사 청산 문제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반도는 지난 200년 동안 원치 않는 싸움을 겪었다. 조선 후기의 농민반란과 동학혁명, 망국에 저항한 의병운동, 식민통치하에서의 독립운동과 전시동원 등 형극의 길을 걸었다. 동학혁명 후 자행된 대량 살육과 식민지 말기에 군국주의가 강요한 징병과 징용, 정신대와 위안부 등 전 방위적인 수탈은 가혹한 고통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독립으로 보상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해방된 조선은 역사로부터 배신당하고 강대국에게서 배신당했다. 조선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친일파’에게 점거되면서 해방의 꿈은 사라졌다. 해방된 조선에서 친일파의 부활은 모든 환란의 원인이었고,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해방으로 일본군은 물러갔지만, 친일파로 인해 일본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다. 제1공화국에서 지금의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은 거듭 바뀌었지만 친일파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4월 혁명으로 들어선 제2공화국이 군사쿠데타로 무너졌을 때 그 자리는 일본 육사를 나온 박정희가 차지했다. 일본군 장교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음지의 친일 권력은 양지로 확장됐다. 그러므로 ‘친일파 문제’는 1945년 이전의 과거사가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며, 반일 종족주의로 드러난 식민지근대화론은 그 하나의 병증에 불과하다.

역사청산에 거듭 실패했다. 1940년대에는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반민특위는 해산됐고 애국자가 학살되고 배제된 자리를 친일파가 채웠다. 1960년대에는 4월 혁명에도 불구하고 제1공화국을 청산하지 못했다. 1980년대에는 전두환의 광주학살로 박정희를 청산하지 못했다. 1990년대에는 6월 항쟁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시대를 청산하지 못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은 간절하지만 친일파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압도하는 상황, 정의와 도덕을 향한 의지는 강하지만 불의와 부도덕이 판치는 세상, 이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끝없이 소모적인 대결, 이것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이명박·박근혜 시대를 청산하는 과제와 맞닥뜨려 있다. 이 과제는 지난 9년간의 국정 파탄을 정리하는 일이지만, 그 속에 청산되지 못한 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두 전직 대통령과 몇몇 측근이 구속됐지만, 중요한 것은 인신 구속이 아니라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역사청산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탄핵 이전의 헌정 질서 문란과 탄핵 이후의 정치적 갈등 역시 그 저항의 일환이다. 국회가 실종되고 삼권분립체제가 무너진 상황이다. 그 근저에 친일파가 있고 친일파에서 변신을 거듭해 오늘에 이른 부패 기득권 세력이 있다.

친일파는 해방 정국에서는 ‘반공주의자’로, 군사쿠데타 후에는 ‘경제역군’으로, 6월 항쟁 후에는 자칭 ‘산업화 주역’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친일파이고 근본 속성이 부패 기득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민주화 과정에서 친일 전력과 부패 문제가 불거지자 이들은 반공안보 논리에 기대어 격렬하게 저항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상을 만들어 가는 본질적인 과정이다. 

이 국면에서 역사적 대결론은 확실한 역사청산을 통해서 현대사를 바로잡고 그것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타협론은 부패 기득권 세력이 역사적 과오를 시인하고 우리 사회가 그 반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공존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어느 경로를 선택하든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그 후의 대통령선거가 역사청산의 마지막 계기가 될 것이다. 

역사의 전환기 국면에서 촛불이 혁명으로 발전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촛불은 과거를 태워 미래를 밝힌다. 촛불혁명은 부패 권력의 국정농단에 대한 저항이라는 1단계 현재시제를 표상하지만, 아울러 역사청산의 최종적인 종결을 지향하는 과거완료형인 동시에, 조만간 다가올 통일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미래완료형으로서, 과거와 미래까지 함축한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친일찬양금지법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또한 친일 후손들이 국립묘지에 안치되는 것도 철저히 막겠다고 약속했다. ‘친일청산’을 대놓고 논하는 것은 그동안 광복회 내에서도 금기시 돼 왔다. 

김원웅 회장은 “300명의 국회의원들 중 친일파 후손들이 100명이 넘었다. 반대로 독립운동가 후손은 나와 이종찬씨 딱 2명이었다. 이유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친일 집안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그 경제력을 밑거름 삼아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가 됐다. 친일 정치인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보수‧진보진영 모두에서 친일청산이 절실한 이유다.”라며, 

“한국전쟁 이후 친일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빨갱이’다. 제주4‧3, 여순 항쟁에서도 ‘빨갱이’로 몰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일어난 모든 항쟁(제주4‧3, 여순, 4‧19, 5‧18, 6월 항쟁, 촛불혁명까지)을 살펴보면, 정치권이 아닌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나 친일반민족세력과 맞서 싸운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해방 이후 항쟁들은 항일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1945년에 만들어진 체제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향후 10~20년이 우리나라의 100~200년을 결정할 것이다. 

일본 경제침략으로 촉발된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이 밑그림을 드러냈다. 광복 7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친일 잔재가 여전해 완전한 광복을 이뤄내지 못한 분노를 안고 살아왔다. 주위를 둘러보면, 지명을 비롯해 아직 일제의 냄새가 농후한 명칭은 도내에 널렸다. 

교육계만 해도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가 많고 유치원, 교장, 교감, 훈화, 경례 등도 친일의 잔재다. 사물함, 학교 이름에 방위를 나타내는 동서남북이나 중앙, 제일 등도 일제가 행정 통치의 편의를 위해 지은 관행에서 비롯됐다. 

경기도는 일제 청산 4대 전략으로 ▲발굴·기록화 ▲청산 ▲피해자 위로 ▲독립정신 계승을 정하고, 내년도 6개 사업을 추진한다. 

먼저 '경기도 친일 문화잔재 아카이브 구축' 사업으로, 올 하반기 진행하는 친일 문화잔재 조사 연구용역에서 조사된 자료를 영구 보존한다. 도의 정체성 확립과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해 '경기도사 재 편찬' 사업을 마련하고, 현재 재 편찬을 위한 조직 구성 및 운영 방향을 검토 중이다.

경기도 문화에 깊이 박혀 있는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사업도 시작한다.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위해 친일잔재 청산 캠페인, 도민 교육, 문화예술 콘텐츠 개발, 학술 포럼, 다큐멘터리 제작 등 일제강점기에 스며든 문화적 요소를 청산하기 위한 사업을 공모한다. 

또 우리가 일상에 사용하는 일본식 언어의 청산도 병행한다고 한다. '경기도 공공언어 개선 캠페인 확대'는 교육 콘텐츠 개발 및 TV방송, 유튜브, 오프라인 교육 등을 통해 일제잔재 용어 순화어 개발 및 올바른 언어 사용을 독려하기로 했다. 

 

가정, 학교, 직장에 잔재하는 일제 문화를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바꿔나가는 운동부터 시작하자. 그러기 위해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 프로젝트는 도민 운동으로 펼쳐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분포된 친일 잔재를 이번에는 제대로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런데, 예술의전당이 지난 8월 30일과 9월 21일 주최한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을 표방한 음악회에서 친일파 작품들이 대거 공연됐을 뿐 아니라, 두 공연 모두 친일파 작품들로 피날레가 장식하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영향력으로 보나 해방 이후의 사회적 위치로 보나 친일파의 작품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 등장했으니, 친일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8월 30일 첫날 공연은 국군교향악단의 <독립군가 메들리> 연주로 시작했다. 공연 중간에 친일 작곡가 김동진의 <목련화>와 <진달래꽃>이 불려 지더니, 피날레에서는 관객과 출연진의 합창으로 <선구자>가 불려졌다. <선구자>는 친일파 윤해영이 작사하고 친일파 조두남이 작곡한 가곡이며, 독립군의 노래와 친일파의 노래가 동일한 무대에서 연주된 것이다.

태풍 때문에 2주 연기된 9월 21일 둘째 날 공연에서는 친일 작곡가 김성태의 <동심초>, <이별의 노래>와 김동진의 <가고파>가 불려 졌는데, 특히 <이별의 노래>는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첫날의 <목련화> 및 <진달래꽃>과 둘째 날의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은 만주국 수도 신징(신경, 지금의 창춘)에서 일본과 한국·만주·중국·몽골 5족(族)의 공존공영과 일왕(천황) 지배 하의 낙원 건설을 찬미한 친일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서 "김동진은 1943년 1월 신징기념공회당에서 만주악단협회와 신징음악단 공동 주최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악곡 발표회'에서 관현악곡 <건국 10주년 경축곡>, <양산가>와 합창곡 <건국 10주년 찬가> 세 곡을 직접 작곡하고 지휘해 발표했다. <양산가> 이외의 두 작품은 오족협화와 왕도낙토의 만주국 통치 이념, 그리고 일본의 대동아 건설을 그린 작품이다."라고 말한다.

<선구자>의 작곡자 조두남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찬미한 것도 모자라, 해방 뒤 애국자로 가장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독립운동과 조금도 관련 없는 <선구자>를 독립투쟁과 연관시키기까지 했다. 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점은 2015년 2월 발행된 <관훈저널> 제137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구자>가 독립운동과 무관한다는 점은, 조두남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족 기타리스트 김종화의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이 증언을 다룬 1996년 11월 27일자 <한겨레>는 "항일 독립의 기상을 표현한 가곡 <선구자>의 원 제목은 <룡정의 노래>였으며, ‘가사도 현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고 중국의 한 조선족 음악가가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는 <룡정의 노래>가 44년 봄 헤이룽장성 무단장(목단강)시 인근의 닝안(영안)에서 열린 조두남 씨의 신곡 발표 공연에서 첫 선을 보였다면서, 당시 가사에는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따위의 구절은 없었으며, 그 대신 '눈물의 보따리', '흘러온 신세' 같은 유랑민의 설움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돌아봤다."
 
1944년이면 조두남이 한창 친일을 할 때였다. 그런 시기에 자기가 독립운동을 생각하며 <선구자>를 작곡했노라고 해방 뒤에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김종화씨가 증언한 것처럼, 해방 뒤에 가사를 바꿔놓고 그렇게 위장했던 것이다.

<동심초>와 <이별의 노래>를 작곡한 김성태는 군국가요뿐 아니라 일본 국민가요까지도 퍼트리는 데 열성을 보인 친일파다. 총독부가 만든 친일 영화 <농업보국대>의 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다. 그의 친일 활동 중 일부는 <친일인명사전>의 설명으로 "1942년 1월 라디오로 방송된 <아세아의 힘>, <미·영 격멸가>, <기쁘다 마닐라 함락>, <남진 남아가>, <흥아 행진곡>, <태평양 행진곡> 등을 부르는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을 지휘했다.“ 라고 설명했다. 
 
예술의전당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친일파들의 작품을 생각 없이 틀어주는 것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체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우리 사회의 '친일 인지(認知)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절감케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3·1운동 100주년 특집인 3월 9일 방송에서 친일 작곡가 박시춘의 작품을 들려줬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날 연주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라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 내용 자체는 일본을 찬양하지는 않지만, 일본을 찬양했던 사람의 영혼이 실린 노래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 특집에는 부적합한 노래다.
 
박시춘은 1942년부터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군국가요를 13곡이나 작곡했다.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아세아의 합창> 등을 만들었다. 그런 친일파의 노래를, 다른 명의도 아니고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내보냈으니 공영방송 KBS가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을 표방한 음악회에서 친일파 작품들이 울려 퍼져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친일의 잔재를 언제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을지... 

그러기에 아직도 아베 같은 인물들이 대한민국을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닐까?

위안부 문제에 이런 극우적 주장이 발붙일 수 없도록 적극 대처해야 한다. 국내 극우세력이 ‘친일적 목소리’를 노골적으로 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납치 강간을 통한 일제의 성노예화를 정당화하고, 국가 폭력은 없었다’는 아베 정부의 대변인을 자처한 자에 대해 반드시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연세대 류석춘 교수가 최근 강의 도중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과 동일시하고 수강생에게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위안부와 관련해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이 아니라며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반역사적이고 반인권적인 내용이 가득하다. 

류 교수는 지난 19일 수업에서 △자신을 ‘친일파’라고 주장하고 △위안부를 매춘부에 비유했으며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은 통진당과 같은 단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프레시안>이 21일 보도한 '발전사회학' 강의 녹음 본에 따르면 류 교수는 이영훈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강제동원 부재론 주장을 소개한 뒤 “(위안부는) 일종의 매춘”이라며 “매춘은 오래된 산업이고 많은 국가가 용인하고 있는데 일본만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위안부는 일본 민간이 주도하고 일본 정부가 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국제사회에서도 이미 ‘전시 성노예’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정립된 사안이다. 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은 ‘납치되거나 속임수에 넘어가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충분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았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1400회를 맞았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세계적 주목을 끌었던 것도 그런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 및 관헌의 직접 개입을 인정했던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 담화를 뒤엎고,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간 증거가 없다’는 아베 정부의 억지 주장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조차 개탄하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된 국가적 반인권 범죄행위라는 사실은 이미 학계의 연구로도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런데 역사적 진실을 함부로 왜곡하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폭력이며, 보호받을 어떠한 명분도 가치도 없음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믿기조차 어려운 망언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가 과연 상식과 양식이 있는 사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체 현직 교수가 강단에서 할 수 있는 발언들인지 경악스러울 뿐이다. 학문의 자유를 명분 삼아 자신의 극우적 역사 인식을 사실인 양 떠벌리며 역사를 왜곡했다. 

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 옛 이름)의 순수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그는 “정대협이 할머니들을 모아서 교육을 시켜 같은 말을 하게 만들었다”며 “정대협이 없었으면 할머니들 흩어져서 각자 삶을 살았을 텐데 지금은 마이크 잡고 떠벌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대협 활동하는 사람들이 북한과 가까운 통합진보장 간부들과 얽혀 있다. 정대협은 순수하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단체가 아니다”고 했다. 

이는 일본 극우 집단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망언 중 망언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운동을 폄훼하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반국가단체로 매도하는 데서는 그의 교수 자격마저 의심이 들 정도다. 류 교수 주장은 피해 할머니에 대한 인격모독일 뿐 아니라,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 어렵사리 진실을 드러낸 공동의 노력을 부정하는 파렴치한 망발이다. 결코 용납되어선 안 된다.

정의기억연대는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밝혔다. 정의기억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연세대는 류석춘 교수를 즉각 해임하고, 류 교수가 피해자들이 입은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이 더 이상 훼손당하지 않도록 법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는 “배상을 받아야겠다. 많은 학생들 앞에서 그것도 교수라는 직책을 남용해 이런 완전한 허위사실을 가르치고 유포하고 있다”고 페이스 북에 적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으며, 이걸 강의라고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너무 괴로울 것 같다. 

류 교수는 친일파 청산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는 (식민 잔재를) 청산하려다 보니, ‘청산하자’고 주장하는 놈들 조상이 다 친일파”라며 “한국에서만 일본이 말도 안 되는 국가로 취급받는다. 일본은 세계적인 강대국”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류 교수는 “나를 혹시 여러분이 친일파라고 오해할 것 같은데 친일파 맞아요, 나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봤을 때 중국이랑 친한 거보다는 일본이랑 친한 게 더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매춘부와 과거 위안부를 동급으로 보는 것인가'라는 학생 질문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일본이 좋은 일자리를 준다고 속여 위안부 피해자를 데려갔다'는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그는 "지금도 매춘 들어가는 과정이 그렇다. '매너 좋은 손님 술만 따라주고 안주만 주면 된다'고 말해서 접대부 되고 매춘을 시작한다"고도 했다. 질문한 여학생에게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요. 지금도 그래요"라는 막말도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류 교수는 2005년 출범해 ‘친일 미화’ 등 역사 왜곡 논란을 촉발했던 뉴라이트전국연합에 참가했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모임인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 박정희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대표적인 우파 인사로 알려졌다. 

자유한국당의 혁신위원장, 조직강화특위 위원, 지방선거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발언은 우발적·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다. 이번 ‘위안부 망언’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의 <반일 종족주의> 내용을 설명하는 강의 중에 나왔다는 점에서 뉴라이트 계열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류 교수는 2017년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청년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진보 진영에 견줘 온라인 대응 역량이 뒤처진다는 지적에 대해 “내가 아는 뉴라이트만 해도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하나밖에 없다. ‘일베’ 많이 하시라”며 청년들에게 ‘일베’ 활동을 권장했다. 언론기고를 통해 촛불민심을 부정하고 보수파의 태극기집회를 ‘의병활동’으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가슴 아픈 역사 앞에 칼을 꽂는 막말을 보니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출신답다. 천추의 한(恨)을 안고 살고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에 이다지도 잔인하게 대못을 박아야만 하느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찾아볼 수 없다. 얄팍한 지식과 간악한 혀로 일제의 만행을 용인한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류 교수는 더럽고 

추한 말로 살인을 저지른 ‘정신적 살인자’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한국을 떠나라.

류 교수는 그간 비상식적인 언동을 하면서도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의 충격적인 위안부 망언은 묵과할 수 없다. 이영훈-류석춘으로 이어지는 위안부 망언은 단죄해야 한다. 연세대는 진상을 밝히고 류 교수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 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권과 시민단체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

류 교수의 막말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류 교수는 2006년 <경향신문>이 주최한 ‘진보개혁의 위기’ 좌담회에서 “좌파, 진보가 우리 보고 극우, 수구라고 하던데 극우는 테러하는 안중근 같은 사람이지 난 연필 하나도 못 던진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2017년에는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으로도 활동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탄핵 당했다.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인 사사카와 료이치가 세운 일본재단(The Nippon Foundation) 자금으로 설립된 재단인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을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역임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연구기금은 친일적 지식인을 배양하고자 하는 의도와 목적을 가진 일본정부의 돈을 받아서 국내 학자들의 학술연구를 지원하는 기구인데, 모든 연구자가 다 그렇진 않지만 다른 나라의 연구기관과 달리 실제로 일본 정부가 주는 이 기금의 돈을 받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친일적 언행들을 할 가능성이 높다. 

역대 연세대 총학생회와 이한열기념사업회 등이 모인 ‘류석춘 교수의 즉각 파면을 요구하는 연세인’은 22일 오후 성명을 내어 “연세대는 일본 극우세력의 나팔수 구실을 하는 류석춘 교수를 즉각 파면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일제와 독재에 항거해온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모교에서 류 교수의 망언과 같은 부끄러운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연세대가 류 교수에 대한 파면을 결정할 때까지 학교 내외에서 파면 요구 서명운동, 총장 항의 방문, 교내 촛불집회 개최 등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도 “류 교수의 발언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23일 정기 중앙운영위원회에 해당 안건을 상정해 모든 대응을 할 계획”이라며 “류 교수의 발언으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 사례를 제보받는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정관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에 대해 교원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필요하다면 절차에 따른 징계 등 처리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등이 펴낸 책 '반일 종족주의'가 위안부 성노예 부정 등의 주장으로 큰 논란과 반발을 촉발했다. 정상혁 충북 보은군수는 위안부 배상 문제에서 아베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철순 부산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 북 콘서트 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뒤늦게 뻥튀기되고 부풀려졌다는 취지의 말을 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발언 당사자들은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 등으로 해명했지만, 이미 입증된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거나 왜곡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들이라는 엄중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학계에서 큰 논란이 된 ‘반일 종족주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되풀이하며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 학자적 자질과 처신마저 의심케 된다. ‘일제 강제 침탈론은 거짓’, ‘조선인 노동자, 위안부 전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는데, 반박할 가치조차 없으며, 일본 극우 인사도 한꺼번에 하기 힘든 망언종합세트다. 

이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파면 등 고강도 조치를 요구한 곳은 정치권이다. 사안이 워낙 민감한 데다 류 교수가 2017년 자유한국당의 혁신을 주도한 까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본 극우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망언을 일삼은 류 교수를 즉각 파면하고 본인은 한국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바른미래당 등 야권도 “얄팍한 지식과 간악한 혀로 일제 만행을 용인한 정신적 살인자”라고 독설을 퍼부으며 류 교수의 파면을 촉구했다. 

자유한국당도 “지탄받아 마땅한 반국민적 발언”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민국에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거기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법이다. 류 교수의 굴절된 역사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류 교수의 망언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며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지식인층이 잘못된 역사관으로 매국적 발언뿐만 아니고 나라를 잃고 꽃다운 나이에 순결까지 잃은 위안부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전문] 류석춘 "가정형편 어려워 전선에 나간 할머니...쥐죽은 듯 살던 분들이"
 http://me2.do/5cK8Dp7Y

일본 아사히신문은 23일 '총리의 주장에 문 대통령은 피곤...한국이 본 최악의 대립'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에는 일본이 고압적이고 일방적이었다"는 문정인 특보의 발언을 재차 소개했다. 해당 인터뷰는 지난 14일 첫 보도된 것과 동일한 내용이지만, 아사히신문은 이날 오전 6시 온라인 톱 유료기사로 인터뷰를 다시 한 번 기사화했다. 

문 특보 인터뷰를 소개해 보자면,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도, 한국도 상대국을 때리면 인기가 생기는 구조"라며 "상대에게 유화적 태도를 취하면 국내 정치에서 어려운 상황에 빠지기 때문에 강한 자세로 나오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또한 "지도자간 불신도 있다"며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협력이 어렵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에 문 대통령이 피곤을 느끼고 체념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일관계 악화의 직접적인 계기로 꼽히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해 양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박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초부터 청구권 협정에 규정된 분쟁해결 절차를 내세워 외교협의, 제3국 참여 중재위 설치, 제3국만의 중재위 가동 등 3단계 절차를 차례로 요구했다.

일본 측이 일방적으로 (첫 단계인) 외교협의를 못했다고 간주하고 다음 절차(중재위원회)에 올랐다며, 한국은 이후 6월에 대응방안을 내놓고 (첫 단계인) 외교협의에 응하겠다고 밝혔으나, 일본은 거부했다. 한국인들의 심경을 감안해 형식적 협의라도 응했어야 했다. 이전까지 한일 관계에서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이번 일본은 고압적이고 일방적이다. 

박근혜 전 정부 당시 대법원장이 정권의 지시로 강제징용 소송의 진행을 늦춘 이른바 '사법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권도 사법과 협의하면 불법이다. 현 정권은 탄핵이라는 민의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법적, 정치적 민감성을 일본이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특별법 제정 등 해결을 위해 협력하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사 문제를 두고 일본에서는 '사죄 피로', 한국에서는 '진심을 담은 사죄는 없었다'는 생각으로 공통인식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문제의 본질이라며, 세대가 바뀌면 상황도 달라진다는 견해도 있으나, 일본에서는 수정 교과서에서 (역사를) 배운 세대도 있고 한국에서는 민족주의가 강해지는 경향이 있고, 반일, 반한이 젊은 세대에서 강해지는 것이다.

악화된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후 한국에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것을 언급하며, "작지만 성공사례를 만들어야 한다"며,  "북한문제, 경제협력 등 양측 국민에게 서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하고 30-50 클럽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인구 5천만 명이 넘으면서 우리보다 앞서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은 곳은 여섯 나라뿐이다. 미국은 1970년대 말에, 독일·일본·프랑스는 1990년대 초반에, 영국과 이탈리아는 1990년대 중반에 3만 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1인당 소득의 증가 속도가 둔화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이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이다. 장기침체 국가로 알려진 일본의 성과는, 지난 30년 동안 1인당 소득증가율은 연간 0.9%지만,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간 1% 초반 대를 유지하였다. 3만 달러 소득 달성을 기점으로 성장률이 급락한 특징이 있는데, 거품 붕괴와 인구 감소, 고령화의 부작용이 컸다.

사실 30-50 클럽 가입 시점을 전후하여 3% 안팎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기록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1990년대 초중반에 30-50 클럽에 가입 후로 20여년이 흘렀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2010년대 들어 증가율이 연간 1.7%로 둔화했다. 의지와 함께 인내심이 요구되는 대전환기임이 틀림없다.

한국은 경제 규모에서 러시아와 우위를 다투고, 군사 규모에서도 일본·영국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보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이 동아시아 지정학의 하위변수, 종속변수라는 굴욕적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반도의 분단과 남북의 대치 상태가 국제정치학에서 우리의 역할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행일치를 가벼이 여기는 기미가요의 섬나라. 지금이야말로 일본과의 비교우위를 단단히 준비할 시기다. 일본인의 가치관이 ‘앞에서 웃고 뒤에서 욕하는 일이냐’는 혼네와 다테마에로 무장한 일본인의 두 얼굴의 정치논리를 역이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전쟁국가로의 재건을 모색하는 아베 정권에 맞설 만한 국력의 신장은 물론이다. 욱일기를 휘감은 부패한 극우정권의 미래는 없다.

앞으로도 일본은 미·중의 눈치를 살피며 한국을 이용하고 자극할 것이다. 다행히 일본은 1980년대의 경제동물이 아니다. 혁명으로 극우정권을 바꾸지도 못한 정치 무관심의 나라다. 21세기에 안 어울리는 수동적 국민성을 고집하는 전범국가다. 여전히 스스로가 서유럽의 일부분이라 여기는 퇴행적 오리엔탈리즘의 그늘이다. 

오는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일본이 올해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궤적을 2회 이상 탐지하지 못했다’며 일본 정부는 23일 교도통신에 급박한 심경을 드러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올해 5∼9월 발사한 미사일 중 동해 쪽에서 경계 중이던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이나 항공자위대 레이더가 탐지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미사일 탐지는 발사 지점까지의 거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국 쪽에서 포착하기 쉬우며, 한국군은 이들 미사일 탐지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는 전했다. 5∼9월 발사된 미사일 대부분이 통상보다 낮은 고도 60㎞ 이하로 비행했으며, 저고도와 변칙적인 비행궤도로 인해 일본이 이를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교도통신은 ‘한국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한 것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미치는 영향이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한미 양국과의 연대 강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한일 GSOMIA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교도통신에 밝혔다.

교도통신의 보도대로라면 지소미아가 종료될 경우 일본은 북한 미사일 대응에 있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4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이와야 다케시 당시 방위상은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 통보가 미사일 정보 수집 및 분석에 영향을 줬느냐는 물음에 “협정이 올해 11월까지 유효하므로 영향은 없었다”고 답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경제 문제는 따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역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구하는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어떻게 변명하든 과거사를 경제 문제와 연계한 게 분명한데도 (이를 부정하는 것은) 대단히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반도체ㆍ디스플레이 3개 핵심소재 수출 규제 조치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와 주제네바 일본대표부에 양자 협의 요청서를 보낸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협의에 응하겠다는 방침을 20일 밝혔다. 양자 협의는 WTO 분쟁 해결의 첫 단계로 한국이 요청서를 발송한 지난 11일 일본이 이를 확인하면서 WTO 제소 절차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로서도 일본과의 분쟁이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설사 WTO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다는 한계도 있다. 우리 협상단은 양자 협의에서 일본의 무역 보복 철회를 끌어내겠다는 각오로 치밀한 논리를 세워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이 먼저 자유무역 원칙을 무너뜨리며 시작된 분쟁인 만큼 우리가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이 급감하는 등 한일 관계 악화의 영향이 뚜렷해진 가운데 일본 보수 및 우익 성향 언론에서 여전히 한국을 탓하는 논평이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2일 한국에서 불매운동이 오랜 기간 이어지는 이유에 대한 자성 없이 한국 내에 생긴 반일 분위기만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가 반일 감정을 방치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2일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여행객이 전년 동월보다 48% 감소했고 한국인 여행객 의존도가 높은 쓰시마(對馬)시 등 지역 경제에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교류) 감소의 원인은 한국 사회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져 여행을 삼가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반일 감정 확대를 걱정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는 “한국에서는 요즘 일본 관광 중에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개하는 것이 꺼려지는 분위기”라고 원인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지금처럼 오래 이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라 판단하며 “반일을 애국심의 증거로 삼는 것과 같은 분위기가 생겨서 동조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 측에서) ‘일본은 한국의 경제 성장을 방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등 대립을 부추기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이 매우 무겁다”고 말했다.

 

2019. 9. 23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중앙회 회장 한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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