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br>
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

양심이란 국어사전에는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말과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며 동심은 어린이 마음 또는 어린이의 마음처럼 순진한 마음이라고 쓰여 져 있다.

양심은 동심이요 동심은 곧 양심이다. 동심이 있는 곳에 양심이 있고 양심이 있는 곳에 동심이 있다 동심은 천사의 마음과 통하고 천사의 마음은 곧 양심과 통한다.

예절이란 일정한 생활 문화권에서 오랜 생활 관습을 통해 공통된 생활 방식으로 정립되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사회 계약적인 생활규범이고 외국에서는 에티켓이 곧 매너이다. 예절은 마음의 뿌리이며 샘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올 때 실오라기 하나 몸에 걸치지 않고 나왔다. 또 세상을 하직할 때 역시 빈손으로 가는 것이 천칙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 날 때에는 동심인 양심만을 지녔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어째서 흑심이 생기는가? 여기에 물질을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하는 달걀 논법을 빌려 올 필요도 없이 인간은 역시 생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소유욕이 곧 인간의 선악인 양심과 흑심을 낳게 한다. 소유욕에는 한정이 없다고 일러온다.

자기가 잘 살기 위해서는 또 잘 되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부당히 뺏고 남을 짓밟아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양심 아닌 양심이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더 묘해가는 경향은 어떤 풍조일까?

흔히 양심만 가지고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한다. 악착같이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판국에 양심이 어디 있느냐고 경멸해 버리는 경향이 요즘 와서 부쩍 증가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부당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양심을 속이고 합리화 하려 드는 무리가 늘어가는 판국이 되어 개탄할 노릇이다. 작게는 개인, 크게는 단체 더 나아가서는 국회까지 곧잘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학교에서까지 학생들이 입후보 하고 회장을 뽑는데 알게 모르게 물질이 따르기 마련이다.

표를 산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양심을 산다는 뜻이 되고 표를 파는 사람은 물질만을 생각했지 양심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인데 선물이라도 생겼으니 음식이라도 대접하면서 이익이 아닌가 하고 말 할지 모른다. 하기야 돈 안들이고 벌었으니 그런 장사도 흔하지 않다. 당장은 이익이 생겼으니 나중에 자기에게 몇 갑절의 손해가 온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당장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손을 내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고 반문을 할지

꽃을 보면 누구나 예뻐하며 좋아 한다 그러나 희귀종 야생화를 찍으려고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주민들이 한데 모여 순번제를 만들어 꽃을 꺽 고나 뿌리를 뽑아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만행을 저지르는 사람을 감시를 하고 있다고 하니 도대체 사람들의 양심과 동심은 어디에 있는지 자연을 해치는 몰지각한 사진촬영은 수준 낮은 이미지만 양산해 양심 없는 짓을 해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다 그러기에 양심을 팔고 사는지 모른다.

오늘날 같이 양심을 팔고 사는 장사가 번창한 때도 드물 것이다 신문전단지에 끼어 염가대매출의 양심 염가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은지 모르지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양심이라고 한 때도 있고 도덕을 중히 여긴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낡아빠진 사상이고 요즈음은 돈을 주면 얼마든지 양심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도덕도 헌신짝같이 그것을 말하면 구시대의 무용지물로 취급하는 신세대가 왔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지만 남이 잘되는 것을 이유 없이 시기하는 속단이 요즘 와서 부쩍 더해진 것 같다

‘개 나하고 초등학교 동창인데 큰 회사에 회장 이래 초등학교 때는 코를 줄줄 흘리던 것이’ 자식 돈 좀 벌었다고 우쭐대, 개구리 올챙이 쩍 생각 못하고 이런 식이다. 개 아니면 그치다 그 어른이나 그 분이라고 부르던 시대는 아 옛날이요

요새는 존칭을 안 써야 자기가 잘난 것으로 통한시대다 이것도 현대인의 양심인지 모른다. 어디 그런 현대인뿐이랴

지하전철을 타고 출근길은 콩나물 심듯 빼 곡이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있지만 아직도 경로석이나 임산부석에 버젓이 아픈 척, 나이도 안 되는데 얌체같이 이어폰 꽂고 스마트 폰에 고개를 숙이고 노닥거리는 양심이 없는 사람들 또 무슨 때마다 야금야금 물건 값을 올리는 약삭빠른 상인의 양심을 비싸면 안 사면 되지 무슨 잔소리냐고 호통을 치는 배짱장사 양심에 당국은 외면을 하는 양심의 미덕을 가진 양 그럼 힘도 없고 빽 도 없는 우리 서민들만 골탕은 먹든 말던지

또, 가짜 술(양주) 인삼, 홍삼, 산삼, 의약품 또 없는 가 옳지 그것 말이야 밀수나 마약 있지?

이것도 현대인의 양심에서 단단히 한 몫을 보는 아니 위대한 존재지

악 품은 양품을 추출 간다는 말이 있다.

양심은 물들기 쉽다 그렇다고 꼴 두기 마냥 눈알을 뽑아서 뒤통수에 붙일 수도 없고 현대를 외면 할 수도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보다 아름답게 참 되게 살기 위해 양심을 되찾는 운동을 벌이지 않는가를

맹자의 말씀을 인용하면 ‘사람에게 양심이 있는 것은 산에 나무가 있는 것과 같다.’

국민모두가 양심을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은혜는 두려움이 없는 혼의 생장인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변화하는 만큼 그 시대적 변화와 우리 문인들이 먼저 양심을 가지고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되세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분명 고통이 따르고 손해 보는 느낌도 받지만 언제 가는 꼭 보상받는 날이 온다. 큰 인물은 공짜로 만들어 지는 게 아니다

‘작은 일도 물 셀 틈 없고 어두운 곳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참다운 영웅’이라고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늘 주기보다는 받기를 원 한다 또 받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준 것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 받을 때가지 기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인간의 아집이요 어리석음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가가례 (家家禮)라고 해서 지방과 가정에 따라 예절이 다른 것이 흉이 되지 않지만 현대는 모든 생활여건의 발달로 사투리가 엷어지듯 예절도 통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인관계를 가질 때에는 웃어른을 공경 (敬) 아랫사람을 사랑 (愛)하기를 거짓 없이 정성 (誠)으로 하면 그것이 마침내 인류애로 번지게 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칭호를 들을 만큼 예절에 있어 선진적 위치에 있고 독자적인 주체성을 지키고 있다.

또 유교를 창시한 공자 (孔子)가 ‘중국은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군자가 사는 것은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 한 것으로 미루어 공자의 생존 시에 이미 우리나라도 도덕과 윤리와 예절이 정립되어 항해 지던 나라였음이 분명하다

가정은 우리생활의 기본이 되는 곳으로 의식주의 근거지가 바로 가정이요 행복을 설계하고 실청하는 곳이 바로 가정인 것이다 우리의 예절 언어 태도 등 모든 것이 가정에서 시작되고 따라서 가정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려면 마음가정과 표정이 중요하고 정결한 육체관리와 어울리는 화장 및 옷차림 몸가짐과 기거동작이 예의범절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 즉 마음은 예절의 뿌리이며 샘이다

예절은 지켜야 하고 문화인의 자랑이요 교양인의 필수 자질이다. 예절은 화목의 전신이요 경의의 표현이요 사양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요 여러 사람과의 다원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예절은 대인관계의 기본원리이고 정도를 벗어나면 불행하고 사소한 실수로 인재를 놓치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지만 여러분은 잘못 한 것은 바로 인정하고 진심어린 칭찬을 해주므로 신뢰감을 제공하여 꼭 경자년 새해부터는 양심과 예절을 지켜 행복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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