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시대, 온기를 찾아서

2025-11-25     고문진 기자

 

한 시민이 붕어빵을 들고 있다. [사진=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연말이 가까워짐을 알리는 스산한 바람을 맞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겨울 간식을 떠올린다. 호빵, 어묵, 군고구마 등 여러 주전부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붕어빵은 퇴근 및 하굣길에 종이봉투 가득 담아 소중한 이들과 맛과 마음을 나누는 온정의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골목에선 이 고소한 냄새와 철판 뒤집는 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예전처럼 붕어빵 노점을 귀갓길에 우연히 마주치는 일보다 어플이나 검색 엔진을 통해 찾아가는 게 당연해진, 필연적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붕어빵 노점은 공식 통계에서 별도 항목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노점상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수치는 존재한다. 통계청이 분류한 산업 중 붕어빵, 군고구마, 호떡 노점 등이 포함된 ‘통신 및 방문·노점 판매업’의 취업자는 지난해 상반기 33만 9천 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서울시는 2018년부터 이른바 ‘거리가게 허가제’를 도입해 기존 노점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고 있는데, 관련 자료를 보면 변화의 방향이 보다 분명해진다.

한 보도에 따르면 서울 시내 무허가 노점은 2018년 4천 965개에서 2022년 3천 571개로 줄었고, 같은 기간 허가받은 거리 가게는 1천 704개에서 1천 872개로 늘었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서울 시내 노점 5천여 개 가운데 허가를 받은 곳이 1천 8백여 곳으로 약 34% 수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개별 자치구 현황을 보면 규모 축소는 더 구체적이다. 공공데이터포털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의 허가 거리 가게는 47개소에 그친다. 성동구 역시 별도 데이터셋으로 거리 가게 현황을 제공하고 있는데, 전체 행 수가 수십 개 수준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치구별로 편차는 있으나 과거 골목마다 자리하던 노점이 행정상 ‘수십 개’ 단위로 관리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골목 경제의 상징이었던 붕어빵 장사는 이제 그 형태를 바꾸며 실내로 옮겨가고 있다. 커피 프랜차이즈와 디저트 카페들은 겨울마다 붕어빵을 앞세운 시즌 메뉴를 선보이는데, 크기부터 시작해 반죽의 질감, 앙꼬의 다양성 등을 변주로 한 뜨거운 후식 경쟁을 벌인다.

이처럼 길거리 붕어빵 노점이 빠진 자리를 카페와 프랜차이즈가 채우는 현상은 소비 환경 변화와 맞닿아 있다. 추억의 간식을 매장 좌석이나 배달 앱을 통해 쉽게 주문하고, 커피와 함께 먹는 방식이 새로운 소비 패턴으로 굳어진 것이다. 물론 변화로 인한 편리함은 긍정적인 요소나, 이로 인해 사라진 따뜻한 풍경이 못내 아쉽다.

노점이 남아 있는 곳에서도 가격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한 경제지 보도에 따르면 최근 붕어빵은 3개에 2천 원 수준이 일반적이며, 1개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7백 원 안팎이다. 같은 기간 주요 제과 프랜차이즈 크림빵 가격은 1천7백 원에서 1천9백 원 수준으로 올라 빵 가격 평균 인상률이 6%에서 9% 사이를 기록했다는 조사도 있다.

이는 원재료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붕어빵 가격 인상 폭이 체감보다 크지 않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에서 직접 붕어빵을 굽는 상인들은 원가와 노동의 부담이 모두 커진 상황을 토로한다.

겨울철 야외에서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까지 서서 굽는 노동, 가스와 번개탄 비용, 팥과 밀가루 원재료 인상분을 고려하면 예전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붕어빵만으로는 수익을 맞추기 힘들어 군고구마, 어묵, 떡볶이 등을 함께 팔며 매출을 나누는 노점도 많다.

노점 입장에서는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수익이 남지 않고, 인상하면 “예전보다 너무 비싸졌다”는 반응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붕어빵과 군고구마 노점을 하는 장 씨(50대, 여)는 “재료비와 가스비를 빼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이 많지 않다”며 “비싸졌다는 손님들의 말이 서운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붕어빵 가격에 대한 체감과 상인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붕어빵 노점이 줄어들수록 붕어빵을 찾으려는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모바일 앱 마켓에는 시민이 직접 위치를 등록하고 공유하는 붕어빵 지도 서비스가 여럿 등장했다.

대표적인 서비스인 ‘붕세권’은 사용자가 붕어빵, 잉어빵, 풀빵, 국화빵 노점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고, 운영 시간과 품절 여부를 서로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만든 위치 공유 앱이다. 겨울이 되면 “우리 동네 붕어빵 노점이 열었는지”, “어느 출구 근처에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앱을 켜는 시민이 늘어나고, 소셜미디어에는 지도 화면 캡처와 함께 짧은 후기들이 올라온다.

이 같은 흐름은 사라지는 골목 풍경을 시민들이 직접 기록하고 복원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행정과 상권 구조가 바뀌면서 노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비자가 정보 공유를 통해 남아 있는 노점을 찾아가고 매출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제 붕어빵 노점은 더 이상 도시 곳곳에 자동으로 존재하는 시설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장소로 변한 것이다.

 

월-E 스틸컷. [이미지출처=네이버 영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붕어빵 한 마리의 모습이 사라진 골목을 바라보고 있자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월-E(WALL·E)’가 떠오른다.

월-E는 인류가 떠난 뒤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에 홀로 남은 청소 로봇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구는 과도한 소비와 폐기물로 황폐해졌고, 인간은 거대 우주선 액시엄으로 떠나 생활하는 설정이다. 외로이 남은 로봇 월-E는 버려진 물건을 압축해 쌓아 올리며 긴 시간을 보내고, 어느 날 지구의 생명 회복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내려온 탐사 로봇 ‘이브’를 만나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 속 도시가 주는 인상은 거대한 재난보다 정적에 가깝다. 사람의 발걸음과 대화, 생활 소리가 사라진 공간은 겉으로 건물이 서 있어도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구에 홀로 남은 로봇이 수행하는 단조로운 작업 소리와 오래된 뮤지컬 테이프 음악만이 공기를 채운다.

최근 겨울 골목에서 붕어빵 굽는 소리와 냄새가 사라진 풍경은 이 장면과 어딘가 닮아 있다.

종이봉투를 건네며 “갓 나온 것”이라고 말하던 상인의 목소리, 줄 서 있는 손님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 차가운 공기 속 달콤한 팥 냄새가 함께 사라질 때, 도시는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계절의 감각을 하나 잃게 된다.

‘월-E’는 결국 인간이 다시 지구로 돌아와 불완전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쓰레기로 뒤덮인 행성 위에서 작은 초록 식물을 발견하는 장면은, 사소한 생명과 풍경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상징한다.

붕어빵 노점이 겨울 도시에 남긴 자취도 이와 비슷한 지점을 건드린다. 붕어빵은 배를 꽉 채우는 식사가 아니며, 대단한 사치재도 아니다. 다만 잠시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덥히는 경험, 계절을 실감하게 해 주는 풍경, 누군가의 노동과 손길이 담긴 음식이라는 점에 그 가치를 둔다.

우리가 앱을 켜서 가까운 붕어빵 노점을 찾는 일은, 단순한 간식 소비를 넘어 사라져가는 골목의 온기를 다시 더듬어보는 작은 여정이 될 수도 있다.

도시와 경제의 변화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더라도, 작은 온기 한 줌을 향해 손을 뻗는 일만큼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으로 남아 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붕어빵 한 마리가 전해주는 온도가 더 또렷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어쩌면 그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