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의 교훈을 거울삼자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교훈을 거울삼자
  • 김철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4.1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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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br>
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

엄마 뱃속에 10달 있다 세상에 태어나 돌때부터 걸음마를 배워 집밖을 나올 때 또래의 친구를 만나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친구와 더불어 사회화를 이루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님의 역할이 크다.

강가에서 물장구치고 언덕배기에서 뒹굴고 고싸움도 하고 산과 들로 뛰어 다니던 정다운 친구들을 가끔 꿈속에서 만난다. 그 어릴 때 뛰놀던 죽마고우가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 그린벨트는 없어지고 땅만 있으면 투기로 아파트를 지워 아이들의 놀 장소에 아스콘 덮어 흙냄새는 없어져 항상 위험한 상태로 변하고 있는 실정에 졸부들이 판을 친다.

옛 중국의 관중과 포숙아 사귐은 썩 친밀한 교제를 말함 즉 어릴 때부터 친구 죽마고우 (竹馬故友)이다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청년기에 사귄 친구는 정말 인생살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청소년기에 자기의 고민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첫 번째 사람이 바로 ‘친구’라고 한다. 이 때 좋은 친구를 만나면 인생의 동반자로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나쁜 친구를 만나면 일생을 그르치기도 한다.

우정 (友情)은 주고받는 관계이다 따라서 친구에게 우정을 베푸는 동시에 그만큼 받기를 원한다.

주기만하고 전혀 받지 못할 때 우정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통사람들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정해진 원칙대로 되지 않는 것은 우리네 세상 이치고 이것이 현실이 아닌가?

살다보면 주는 만큼 받지 못할 때가 많고 받을 만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인생사 많은 괴로움도 있겠지만 주지 못하는 괴로움과 받지 못하는 괴로움도 여간 큰 것이 아니다

친구 간 에는 상대방에게 진심 (眞心)을 주고 안심 (安心) 경지를 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를 세 종류로 분류하고 그 첫째는 쾌락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이고, 둘째는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는 친구 셋째는 덕(德)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칸트는 우정이 필요한 우정, 취미의 우정, 심정의 우정으로 분류했다 지금 여러분들이 사귀고 있는 친구는 어디에 해당되는가?

좋은 친구하면 또, 관포지교의 고사(故事)를 교훈으로 삼는다.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 관중은 죽마고우인 포숙아는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으며 포숙아도 관중의 의리와 뛰어난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관중과 포숙아가 젊었을 때 같이 장사를 한 일이 있었는데 관중은 집안이 가난하여 포숙아를 속이고 이익금을 많이 챙겨도 포숙아는 관중의 처지를 이해하고 욕하지 않고 모르는 척하며 넘어갔다. 그뿐 아니라 관중이 포숙아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도 있지만 원망안 하고 몇 번이나 벼슬에 올랐다가 쫓겨났어도 무능하다고 비난하지 않고 운(運)이 따르지 않을 뿐이라고 격려해 주었으며 전쟁터에 나가 자주 도망은 쳤지만 비겁하다고 멸시하지 않았다.

그 후 관중은 제나라 공자 규(糾)를 모시게 되었고 포숙아는 규(糾)의 동생인 소백(小白)을 모시게 되었는데 규와 소백이 왕권다툼으로 편이 갈라섰다

소백은 포숙아의 도움에 힘을 얻어 왕위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어 형 규를 죽이고 관중을 잡아들여 환공이 관중을 죽이려하자 포숙아가 왕에게 “환공께서 제나라만 다스리는데 만족하다면 저로서는 충분히 받들 수 있지만 만약 천하를 다 얻으시려고 한다면 저 혼자의 힘으로 벅찹니다. 그러나 관중을 기용하시면 저는 관중과 더불어 천하통일에 전력투구 할 수 있습니다.”라고 간청하여 환공은 포숙아의 청을 받아들여 관중의 죄를 사면해 주고 ‘대부’라는 벼슬을 주어 정치를 맡겼다.

그 후 관중은 대정치가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춘추 전국시대의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는 어떠냐! 물고 뜯고 짖고 깔아 뭉기고 이해를 할 것을 오해를 하여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낸 장본인들은 과거를 탓하지 말고 떳떳하게 나서라

선량한 우리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이젠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친구는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덕(德)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나 칸트가 말한 심정(心情)을 나누는 친구일 것이고 관중과 포숙아가 나눈 우정의 친구일 것이다.

우리 모두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교훈을 거울삼아 진정한 친구를 얼마나 사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마음이 바르고 곧으면 손을 좋은데 쓸 것이요 마음이 바르지 못하여 사물이나 현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면 손은 나쁜 행동에 사용하게 될 것이다. 석가모니가 말씀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가지 못하고 손을 나쁜 일 즉 좋지 않은 일에 쓰는 것은 독 묻은 화살은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친구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하여 친구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면서 참다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4월에는 미래를 향해 주인정신을 가지고 실천적 시대의식에 투철한 친구를 꼭 만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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