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br>
아동문학가 시인 명예문학박사 김철민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아! 어찌 우리 이 날을 잊을 수 없고 역사를 지울 수도 없다.

오늘은 6.25전쟁의 포성이 울 린지 72주년이 되는 날, 1950. 6.25 새벽 4시 탕 탕 탕 소련제 탱크와 포탄 사격으로 북한은 민족을 분열시키고 남침 하였다. 여기저기 널 부러진 수많은 시체와 배고파 울고 울다 지쳐 잠이든 아이 피난길 부모님 손을 놓쳐 전쟁고아들 그리고 시신 옆에 총알이 관통한 철모를 보고 가슴을 찢는 피난민을 뒤에 남기며 남으로 머리위로 포탄을 퍼부어대 비 오듯이 쏟아 진 살육, 파괴, 공포와 기아의 도가니로 시체가 뒹구는 쑥대밭이다.

마치 학살의 광기 속 냉전의 화약고 그 전쟁의 먹구름 속에 전선을 지키다 이름 없이 죽어간 병사와 눈을 뜬 채로 쓰러져간 젊은이와 노인과 아이들은 길바닥에 버려져 무려 인적손실이 남북한 520만명과 이산가족도 1000만명이나 발생하였다.

역사는 우리에게 망각을 가져오고 시간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한다. 굶어본 사람들이 배고픔의 처절한 고통을 알 수 있고, 자유를 잃어버린 사람만이 자유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 있다고 TV 대담에서 칼 폭파범 김현희씨가 대한민국사람으로 전향 자유인이 되고나서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데 아직까지도 종북 주의자들은 자유가 있으니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니 그들은 과연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묻고 싶다.

아직도 희생자들 중에는 그 공로가 현저히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살아서의 고생은 물론 죽어서 까지 돌보는 사람 없이 외로운 영혼으로 떠도는 분들도 있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국민들은 6.25의 비극을 체험하지 못했고 뼈아픈 체험도 없고 우리나라 인구의 약75-80%는 전쟁의 비참함과 공산주의자들의 반민주적 잔학성을 체험하지 못한 체 다만 선대들의 이야기나 교과서를 듣고 관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부서진 기왓장 속 비바람을 삭아 나무들이 소리 내어 울고 밤이면 어둠속을 기어 아무도 엿볼 수 없는 땅굴을 풀로 위장해 놓고 언제나 대한민국을 노리고 있는 지하공작 당원과 간첩 그리고 친북주의자들이 더 무섭다고 한다.

북한의 체제가 민주화 되지 않고선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 사태를 막기 어렵다 이런 북한을 정신적 조국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의 주사파들은 황해도의 비극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젠 D M Z, G O P 한 서린 철조망가에 가슴팍 높이로 자란 푸른 갈대사이로 두루미가 남북을 오고가며 산중턱 이름 모를 무덤 앞산이 높아 못 오시고 물이 깊어 못 오시는 원혼을 부등 켜 안으며 조국의 이름으로 영원 속에 꽃을 피우자.

당시 UN은 창설 후 최초로 우리나라에 UN군을 파병하고 급기야 국군과 함께 침략자 북한공산군을 물리친 후 1953년 7월27일 전문 5조 36항으로 UN군사령부와 북한이 판문점에서 3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휴전상태로 끝나게 되고 우리는 다시 38선에서 휴전선(군사분계선)이름으로 남북이 분단된 채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어 쌍방협정에 의거 UN군과 북한군이 공동경비를 담당한다고 해서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북쪽에는 기정동 선전마을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남쪽에는 대성동 자유 마을에 공동경비구역내 있어 태극기가 펄럭인다. 아버진 황해도 신천인 고향에 향수를 잊을 수 없고 늘 부모님을 북에 두고 단신으로 월남하여 6.25 군사분계선이 가로놓여 분단의 아픔을 보고 고향에서 남쪽학교가 제일 가까운 학교 파평 초등학교 1975년에 도서실을 만들어 반공도서 위인전기 창작동화집과 꿈나무 전집 등 1000여권을 기증하여 새싹들에게 애국의 힘과 평화와 국가관을 심어주었다.

6.25 그때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하면서 불렀던 김영일 동요 노래가 라디오를 통해 울려 퍼져나가고 김철민의 통일의 그날 초등학교 5년 음악교과서에 수록

(대한의 아들 ) 김영일시

나아가자 씩씩하게 대한소년아 / 태극기 높이 들고 앞장을 서서

우리는 싸우는 대한의 아들 / 무찌르고 말테야 중공오랑캐

(통일의 그날) 김철민시

남북이 흩어져도 혈통은하나 / 빼어난 금수강산 세계의자랑

휴전선 장애물 넘고 넘어서 / 남북한 어린이들 손을 잡아요.

시인의 비분과 처절한 울부짖음 나라에 대한 애국심과 용맹 결의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분단의 아픔을 보고 자라온 자식 된 도리로 하루속히 통일의 열망을 남북한 국민과 다 같이 불러 가슴에 와 닿게 하는 동요와 건전가요를 만들었지만 초등학교부터 음악시간에 배워 전 국민의 애창곡으로

제78차 국제PEN대회 경주현대호텔외 9월9일(일)-15(토) 주제로 ‘문학, 미디어, 그리고 인권’이다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북한의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문인 김영순(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이사)가 표현의 자유와 미디어 연사로 국제 인권회의등 참석 증언한 이야기는 무용배우로 13년 근무하고 그후 성혜림과 친구이지만 김일성 직계 자녀의 부인(5호댁)으로 간다는 마지막 날이 될 줄이야

5호댁으로 들어가면 사회와 완전히 단결되고 그후 1호로 조사받아 성혜림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족 8명이 죄명도 없이 끌려가 북한 요덕15호 관리소 정치범으로 수용 1970-79년까지 함경남도 요덕 정치범 수용소에서 9년간 수감생활 할 때 ‘날아다니는 것, 기어 다니는 것 다 잡아먹고 돋아나는 풀 다 뜯어 먹고’ 비참한 생활로 그 속에서는 6명 가족이 짐승이하로 살다가 죽고 구슬픈 인생의 종지부를 찍고 2003년 탈북해 3명만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고 자유를 누리고 잘 살고 있다.

지금부터 나라의 중요함을 다시금 되새기며 조국을 지키다 먼저가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참다운 민주 자유가 없는 땅, 배고픈 굶주림 자기 자신의 정신을 다 뺏기고 새 뇌 작업과 자유와 평화가 없는 나라 ‘요덕수용소는 김병하가 보위부장할 때 김일성에 대한 충성 선물로 만든 것이 요덕수용소’이지만 그 역시 3대까지 멸족당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곳이다.

북한 애국자들은 김일성에 대한 神 충성만이 살길이라는 거짓 선전과 생지옥 같은 북한 땅을 생각하며 심장이 터질 듯 눈물이 나고 70평생 나 존재는 나이 들어 대한민국에 온 것을 후회 없이 살아 있는 동안 참된 인생을 노력 하고 참으로 고귀한 자유의 삶이 될 것이다.

미워도 조국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는 조국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워할 수도 배반 할 수도 없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나라와 겨레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반만년 익혀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이성이었던 것 하루속히 북한 수용소에 갇힌 우리 동포들을 이 행사를 통해 힘과 즐거움을 얻는 것 역시 우리가 여기에 모인 목적중 하나다.

참된 시민이 되기 위해 분단조국의 통일에 대해 지금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통일 안보의식을 굳게 다져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자유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 깨워야한다. 우리시대의 젊은이들 6.25는 잊을 수도,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기념일이다.

우리는 전쟁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죄악이며 한 민족에게 얼마나 큰 멍에를 지었는가를 영원히 기억해야 되고 국민모두가 국력신장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6월은 우리민족에게 있어 더욱 잊어서는 안 될 아픔과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다 먼저 세상을 떠난 호국 영령들과 전몰장병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살신성인의 고귀한 가치를 실천한 애국 영령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우리 선열들의 고귀한 삶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숭고한 희생정신이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아지는 호국 보훈의 달로 이어지고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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