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출처=네이버 이미지)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언제나 넓게 숲을 보는 글을 쓰고 싶지만, 현실은 나무의 줄기까지 세세하게 파고들다 시간에 쫓겨 매사에 급한 마무리로 아쉬움을 잔뜩 흘리는 스타일이라 이번 연재 기사에는 이런 자신에게 여유를 주며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양쪽 모두 최대한 편안하게 쓰고 싶었다.

‘블렌딩톡’ 이라는 이름은 담당 분야와 그 외에 넓고 얕게 보유하고 있는 잡다한 정보들을 이것저것 섞어서 그럴싸하게 버무려보면 어떨까 하는 의미를 담아 정해보았다. 그 비중은 매번 다를 수 있지만, 아무튼 최대한 본업에 충실하게 기록하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블렌딩톡의 첫 번째 주제는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와 채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2015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당시 포털 사이트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르 불문 영화 취향이 잡식인 기자에게 잠시나마 채식인으로 살아갈 의무에 대해 작은 경종을 울린, 짧지만 제법 감동적인 서사였다.

도입부에 촬영 당시 구제역이 돌았던 상황을 보여준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본업을 접고 있던 감독은 이상하게 돼지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이내 카메라를 든다. 농장에 전화해서 돼지를 촬영하고 싶다 말하지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협조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물보호운동가를 만나 운영이 중지된 빈 축사를 조사하러 간다. 그곳에서 발견된 항생제와 호르몬제, 그리고 구제역으로 다 도살 처분된 줄 알았던 곳에서 돼지 소리가 들린다. 말 그대로 ‘돼지우리’ 안에 갇혀있는 불쌍한 새끼 돼지들.

우리가 맛있게 먹는 돼지고기가 도축되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알게 된 이상 무시하고 먹을 수 없게 된 감독의 마음이 이해됐다. 하지만 감독 옆에는 요리 프로에서 나오는 갈비찜을 보며 먹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 내가 먹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남편이 있다.

 

채식의 유형(출처=네이버 이미지)

평소 알레르기 체질 탓에 비건과 폴로 사이를 넘나들며 일찍이 의도와는 다른,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에 의한 채식인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돈가스가 돼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나래이션이 극장을 나선 내 마음이었고, 어쩌면 선택에 의해 채식인의 삶을 지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당시 의지는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엄마가 만든 속이 꽉 찬 오징어순대 앞에서 무너졌지만, 이후로도 필요에 의한 간헐적 채식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2017년 영화 옥자를 만나면서 약 2년간 선택에 의한 채식인의 삶을 살게 됐다.

옥자와 기자의 채식 체험기는 기회가 된다면 따로 다루기로 하고 오늘 잡식 가족의 딜레마 도입부와 함께 나눠볼 얘기는 채식의 종류이다. 채식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땐 ‘그저 풀만 먹으면 다 채식 아닌가’라는 짧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선택적 채식인의 삶에 발을 들인 순간 가장 먼저 알게 된 건 채식에도 종류가 있다는 점이었다.

크게 베지테리언과 세미 베지테리언, 이 둘의 차이는 어패류+육류 섭취 유무이다.

베지테리언에는 채소만 먹는 비건, 유제품까지 섭취하는 락토, 유제품 제외 달걀을 섭취하는 오보, 유제품과 달걀을 함께 섭취하는 락토 오보가 있다. 세미 베지테리언은 채소+유제품+달걀 섭취는 기본, 어패류를 추가하면 페스코, 가금류까지 섭취하면 폴로, 평소에는 비건이며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는 플렉시테리언이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과일과 곡식만 먹는 프루테리언도 있다.

채식을 잘 모를 때에도 비건은 들어봤는데 과일과 곡식만 먹는 채식도 존재한다니, 마치 지구 상에 사람 이외에 다른 종족이 존재함을 발견한 것처럼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을 특별하게 지칭하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표현이 아니다.)

채식인들이 채식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는 다양하다. 그중에 영화 도입부에서 감독이 돼지를 바라보며 느낀 책임의식과 비슷한 마음으로 채식을 선택하는 인구도 상당할 것이다. 특히나 요즘은 기후 변화로부터 환경과 동물을 지키기 위해 내세운 친환경적인 슬로건을 제법 익숙하게 만나볼 수 있다. 영화를 개봉한 7년 전에 비하면 말이다.

직간접적으로 나름 채식을 가까이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는 참 반갑다. 한편으로는 보다 간편하게, 채식에 대한 다소 무거운 기존의 선입견으로부터 다수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보다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여담이지만, 결혼 후에 본 영화에서는 이전에 와 닿지 않던 부분에서의 공감대 형성도 있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으면 안 되는지 가르쳐야 했고, 이건 왜 그렇고 저건 왜 그런 것인지 끝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질문에 난 대답해야 했다. 난 아이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것만 먹이고 싶었다.”

아마 첫 아이를 낳고 이유식의 과정을 거친 대다수의 엄마가 이 대목에서만큼은 깊게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오늘은 영화의 도입부와 채식의 종류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해보았다. 이게 영화 리뷰인지 뭔지 헷갈릴 수 있지만, 앞으로도 그 어느 것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고 얕고 넓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설명하며 기사를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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