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출처=네이버 이미지)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지난 시간에 이어 영화 잡식 가족의 딜레마와 채식 이야기를 해보겠다. 오늘은 채식의 상용화를 언급해보려 한다.

지난 9월 오뚜기 두수고방 출시 기념행사를 다녀왔다. 해당 제품은 엄밀히 말해 ‘사찰 음식의 대중화’로 소개하는 게 맞겠으나, 사찰 음식 역시 채식에 해당되기에 오뚜기의 채식 라인 헬로베지에 이어 출시된 채식 전용 상품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외에 건강하면서도 편리하게, 채식 메뉴를 통한 간편식의 프리미엄화를 추구하는 다른 기업도 많다. 대표적인 예로 풀무원의 ‘지구식단’을 들 수 있다.

지속가능식품 전문 브랜드로 나의 건강, 나아가 지구 환경을 위해 지속 가능한 식문화를 제안한다는 슬로건과 함께 “나는 지구식단 합니다” 켐페인도 실시한 바 있다.

“건강한 식생활은 물론 환경 그리고 윤리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에 대해 적극 표현하는 후기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브랜드의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지구식단의 기획의도.

무슨 무슨 세대로의 구분을 떠나 채식 그 이상의 가치성을 내포하여 해당 제품을 사 먹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지구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이에 드는 솔직한 생각은 첫 번째, 채식의 상용화가 생각 이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구나. 두 번째,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전과 비교하면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해당 영화가 나온 시기에 지금과 같은 채식의 상용화가 일어났다면 영화가 담은 현실이 조금은 달라졌을까’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영화는 도입부에 이어 계속해서 돼지 농장을 보여준다.

친환경을 고집하는 십순이네(돼지 이름) 농장과 축산 공장의 모습을 교차 편집하며 보여주는데 초반부에는 두 곳의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포근한 지푸라기 위에서 진통하는 십순이와 파이프 라인 안에 가둬져 선 채로 분만 촉진제를 맞아가며 새끼를 낳아야 하는 이름도 없는 수십 마리 돼지들.

십순이네 농장 돼지들은 사람이 먹어도 될 정도로 건강한 재료로 만든 사료를 먹지만, 공장 돼지들은 유전자 조작사료를 먹고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180kg의 비육돈이 된다.

공장식 축사에서 일하다 그만둔 수의사가 이런 말을 한다.

“돼지를 다룰 때 말 그대로 나의 개인적인 감정보다 회사의 이익이 제일 중요하다. (다쳐서 치료가 필요한) 한 마리가 도태된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돈벌이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집단(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그는 결국 이 시스템이 괴로워 축사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친환경 농장이라고 해서 모든 게 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십순이네 새끼들 중 남자 돼지들을 거세하는 날, 마취 없이 거세하는 모습에 감독도 아이러니를 느낀다.

“거세를 하지 않으면 특유의 냄새가 나서 비육돈으로 쓰이는 데 걸림이 된다, 마취하고 거세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는 농장 주인의 말에 감독은 혼돈스럽다.

난 이 아이러니한 장면을 보며 농장 주인이 말한 농장의 법칙처럼 식품 산업의 법칙에 대해 생각했다. 수요자가 적은 제품은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

영화가 나올 당시 채식 시장은 지금처럼 상용화 제품이 많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비육식주의로 살아가는 건 소외감뿐 아니라 종종 배고픔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어딜 가나 채식인을 위한 메뉴를 파는 식당 혹은 마트에서 채식 간편식을 구매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말 극히 일부였기에.

이때에 비하면 2022년 현재 채식의 산업화는 대성황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식품 산업 전체에서 ‘채식’은 아직까지 대중적인 키워드는 아니기에 현재의 수요층이 사라지면 언제든 가장 먼저 축소될 영역이라는 ‘시한부’의 운명을 타고난 것.

그런데 또 다른 한 가지, 지금의 채식 시장은 시기를 잘 맞이해 흐름만 잘 탄다면 더 오래갈 수 있겠다 싶은 희망적인 면도 있다. 바로 ESG 경영.

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ESG에는 기업 활동에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한다.

ESG는 개별 기업을 넘어 자본시장과 한 국가의 성패를 가를 키워드로 부상, 식품 산업의 경우 ESG 경영의 일환으로 대체육 등의 식물 지향성 식품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신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전처럼 이름은 야채 크래커인데 열어 보니 치킨 액기스 같은 숨겨진 동물성 재료가 들어간 제품을 구매해서 실망하는 게 아니라, 전 성분 모두 식물성으로 이루어진 제품을 보다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

다시 영화로 돌아와 “인간은 잡식 동물로 태어나는가 아니면 잡식 동물로 길들여지는가” 라는 나래이션이 들린다.

감독은 본인이 채식을 선택한 이후 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언급하며 “고기가 그리운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이야기를 하던 그 시간이 그리운 것”이라 말한다.

영화는 채식을 장려하거나 혹은 채식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며 편향적인 내용을 담은 작품이 아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잡식인에게 오늘 내가 점심에 마주한 삼겹살이 과연 어떤 과정에 의해 식탁에 올라오게 됐는지에 대해 다소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공정과정을 보여주는 이유는 관객으로 하여금 습관적인 젓가락질을 멈추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잡식 동물로 태어난 걸까 아님 잡식 동물로 길들여진 건가?’

또 말이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결국 결론은, 건강을 위해 채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체질에 따라 변수가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기름 뚝뚝 떨어지는 고기만 주구장창 먹는 것보다 상추 한 장, 깻잎 한 장 얹어서 쌈으로 먹는 게 더 건강식에 가깝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아닌가.

그러니 내가 꼭 비건이 아니더라도 ‘채식’ 자체를 낯설게 느낄 필요도, 주변에 존재하는 채식인들을 특별하게 바라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나의 건강을 위해 보다 지혜로운 컨슈머가 되어 요모조모 따져가며 식물성 식품을 자주 접하다 보면 어느새 환경까지 생각하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특정 제품을 광고하는 것도, 채식을 권장하는 것도 아닌 그저 영화를 보며 생각난 부분을 기록했음을 밝히며, 사실 동물을 애정하는 입장에서 다시 본 영화가 생각보다 마음 한켠을 무겁게 해 당분간 고기를 마주하면 잔상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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