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24. 체리슈머 [그래픽=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최대한 아껴서, 필요한 만큼만 실속있게 소비한다."

연일 멈출 줄 모르는 고물가 행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통 업계에서 주목받는 고객층이 있으니 바로 '체리슈머'이다. 체리슈머,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체리슈머(Cherry Sumer)'란 한정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뜰하게 소비하는 전략적 소비자를 이르는 말로, 체리슈머가 나오기 이전  '체리피커'라는 개념이 먼저 있었다.

'체리피커(Cherry Picker)'는 케이크 위에 얹어져 있는 체리만 쏙 빼 먹는 사람을 비유한 말로 기업의 제품 구매력이나 서비스 이용실적은 저조한데 관련 혜택 등 본인의 실속만을 챙기는 데 관심을 두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됐다.

그러나 지속되는 불경기에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트렌드가 주목받으며 체리피커를 합리적 소비자로 인지하는 경향이 확대되면서, 이를 확장한 개념의 체리슈머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 필요한 만큼만 구매할 것

체리슈머는 필요한 만큼만 구매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사러 마트에 갔는데 100g, 300g 이렇게 두 용량으로 포장된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고 가정하자.

50g당 가격이 300g 제품이 더 저렴하다고 해도 체리슈머일 경우 100g 제품을 선택한다. 이유는 과일 특성상 오래 두고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금방 물러질 걸 계산해서 그날 먹을 양만 구매해 간다는 것.

당장에 300g 제품 할인율이 더 높아 보일 지 몰라도 결국 물러서 버리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 손해 보는 구매라는 계산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용량 제품이 가격 측면에서는 더 저렴하더라도, 당장 필요한 만큼만 구매한다.

마트 과일코너에서 만난 장 모씨(36, 여)는 "귤을 사러 왔는데 네 식구라 먹을 입이 많긴 하지만 곰팡이 때문에 오래 두고 먹기도 쉽지 않으니 당일에 먹을 것만 계산해서 일부러 작은 통에 든 걸 사간다"며 "(제가 장 보고 나면) 어머니가 손 작다고 늘 뭐라 하시는데 부모님 세대와 요즘 세대의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공동구매를 통한 실속 소비 지향

위 사례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조금 더 소비의 규모가 큰 체리슈머가 있으니 바로 공구 어플 이용자이다.

서울에 사는 김 모씨(41, 여)는 평소 공구 어플을 통해 과일이나 채소 등을 자주 구매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원하는 물건을 구매해 비용을 절감하는 실속적인 소비를 통해 가계 절약을 해나가는 것이 그녀의 살림 비법이다.

김 씨는 평소 사용하는 공구 어플에 대해 "살림하는 주부들이 많이 애용하는 쿠팡의 로켓프레시에 비하면 일반 배송으로 1~2일 더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가격 대비 질 좋은 농수산물을 원하는 양만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고 (김씨가 사용하는 어플은) 무료배송 혜택까지 있어서 좋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왓챠, 티빙 등 OTT(Over-the-top) 서비스를 쉐어하는 이용객도 체리슈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OTT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고퀄리티의 영상 컨텐츠를 다양하게 섭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와 함께 부담스러운 월 구독료가 치명적인 단점으로 부각되는 가운데 바로 쉐어 사이트가 나타난 것.

일정 수수료를 받고 쉐어를 도와주는 사이트로 이용을 원하는 OTT 서비스와 필요한 정보를 기재하면 쉐어 사이트에서 파티원을 모아준다.

OTT 서비스에서 설정한 동시접속 가능 인원수 만큼 파티원이 모이면 해당 파티원들끼리 월 구독료를 n 분의 1하여 이용할 수 있다. 1인 이용 가격 대비 훨씬 다운된 가격으로 동시에 다양한 OTT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쉐어 사이트를 접하게 된 이 모씨(30, 남)는 "이전에는 비용 아까워서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랑 그냥 한 아이디를 공유해서 썼는데, 동시 접속하면 연결이 끊기니 불편하기도 하고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영상물을 접할 필요가 있는데 같은 가격으로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쉐어 사이트를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쉐어 사이트를 통해 4곳의 OTT 서비스를 이용 중인 김 모씨(23, 여)는 "처음에 넷플릭스만 썼는데 주변에서 티빙 오리지널, 웨이브 오리지널 등 드라마 얘기를 하면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하고 소외감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쉐어 사이트) 이용하면서 친구들이랑 대화거리도 늘어나고 같은 가격에 여러 곳을 이용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 MZ세대 이전의 체리슈머 형태

체리슈머가 MZ세대만의 특징으로 부각되는 면이 있는데 사실 이전에도 체리슈머는 존재했다.

아주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는 단적인 예로 우리네 부모님을 들 수 있다. 무조건 적으로 대용량, 쟁여두기에만 취중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중에서 필요한 물건에 대해 마트별 행사 프로모션을 시의적절하게 잘 사용하는 분들 말이다.

마트 이용객 박 모씨(52, 여)는 "자녀가 셋이다. 지금은 다 큰 성인들이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냉장고에 유제품을 끊이지 않고 채워둬야 할 때가 있었다"며 "그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구르트나 치즈 등을 마트별로 돌아다니며 1+1 혹은 덤을 얹어주는 곳에서 구매했다"고 말했다.

정식 명칭은 아니지만, '가족 통합 포인트 제도'라는 것도 있다.

화장품 로드샵 이용객 김 모씨(30, 여)는 "근무 중에 가끔 화장품 구매 문자가 울릴 때가 있다. 확인해보면 어머니가 계신 동네의 화장품 가게 이름이 찍혀있다"며 "어머니는 늘 제 핸드폰 번호로 포인트를 적립하신다. 가족이 한 번호에 포인트를 모아둬야 빨리 모이고 많이 쓸 수 있다고 강조하신다"며 웃어 보였다.

모 대학 경제학과 Y교수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짠테크, 체리슈머 등의 형태를 단순히 합리적인 소비자의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20-30 젊은 세대의 극심한 취업난의 반작용처럼 '욜로'가 반짝 유행했듯, 대한민국 전체 경제 소득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든 꾸준히 소득을 형성하며 노후를 준비하고자 하는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개인의 선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

Y교수는 "이러한 현상은 예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반복될 것"으로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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