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중국발 코로나에 이어 이번엔 '원유값 상승' 폭탄으로 끙끙 앓는 관련업 소상공인들
가게를 찾는 손님도, 운영하는 사장님도 모두 고물가에 피해 보는 '서민들'
"추가적인 가격 인상 가능성은 낮다"고 말한 정부의 발표는 디테일함 떨어지는 입장 표명... 서민을 살리는 '뾰족한 수'가 절실한 상황

 

22.11.26. 밀크 인플레이션 [그래픽=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코로나 시즌에 개인 카페를 창업하며 역대급 풍파는 그때 다 맞은 줄 알았는데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뉴스 틀기가 무섭습니다."

취재 차 서울 카페쇼에 가서 만난 30대 중반의 윤 모씨(남)는 2019년 경기도 구리에 개인 카페를 열었다.

개업 후 두 달 정도는 걱정 이상으로 장사도 잘되고 좋았는데 생각지 못한 중국발 코로나로 인해 개업 이후 윤씨는 인생 최대의 암흑기를 걷고 있는 것 같다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거리두기 규제도 완화되고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었는데 이번엔 '밀크 인플레이션'이라니,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또 어떤 이벤트가 찾아와 가게 상황을 흔들어 놓을까 싶어 뉴스 보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코로나에 한 번, 원유값 상승에 두 번 우는 관련업 소상공인들

'밀크 인플레이션(Milk Inflation)'은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서 원유가 들어가는 식품 전반의 가격도 같이 상승하는 것을 뜻한다.

원유는 우유와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뿐만 아니라 커피, 제과, 제빵, 빙과 등 2차 가공식품에까지 그 활용 범위가 넓다.

따라서 원유 가격이 오르게 되면 관련 제품의 가격도 덩달아 상승해 전반적인 식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국제 정세로 인한 물가 상승 장기전이 지속되며 지난 9월 이미 관련 업계에서는 '밀크 인플레이션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우려하던 사태가 현실화된 지금, 유제품 기업의 도미노 가격 인상 소식에 가슴이 철렁인 건 단순 구매자뿐 아니라 관련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들은 구매자이자 동시에 생산 판매를 하는 사업자의 입장이기에 그 중압감은 배가 됐다고.

자영업자들에게는 코로나라는 대재앙을 어느 정도 극복하나 싶을 때쯤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해 파생된 각종 물가 상승에 이 위기를 어떻게 또 극복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위에서 언급한 윤씨의 경우 대학 졸업 후 바로 중견 기업에 취직해 10년 가까이 1번의 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1년 365일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냈다.

30대 초반에 들어서며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식당, 핸드폰 대리점 등 개인 창업에 눈을 돌릴 때 윤씨는 큰돈은 못 벌어도 달마다 월급 나오는 회사 생활의 안정감이 좋아 창업하는 친구들을 보며 다소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랬던 그도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의 관심사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면서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고, 결국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창업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일찍이 사업을 시작한 주변 지인들이 공유해준 데이터도 있었고 그가 가진 성실함을 무기 삼아 나름 만반의 준비 과정을 거쳐 야심 차게 카페를 개업, 호황이었던 두 달을 제외하고는 19년 연말 코로나의 등장 이후 상상 그 이상의 후폭풍을 맞이했다.

코로나 초기에는 윤씨뿐 아니라 배달에 중점을 두지 않았던 대부분의 요식업 자영업자들이 곧바로 배달 플랫폼과의 연계로 사업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계산을 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적자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씨는 자신의 퇴직금과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가게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3년 가까이 버텨 지금의 가게 상황까지 끌어 올렸다.

그런 그에게 이번엔 원유값 상승이라는 변수가 찾아왔고, 그는 절망할 새도 없이 카페 메뉴에 변화를 주기 위해 부랴부랴 서울 카페쇼에 참가했다.

그는 "아메리카노와 홍차 2종류 제외 라떼(우유) 베이스의 음료만을 판매하는데 우윳값도 오르고 들여오는 베이커리 업체에서도 얼마 전 가격 인상 연락을 받아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추가해 다른 수요층이라도 확보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으로 차 샘플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카페에 이어 베이커리, 파스타 가게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인상 감행, 고객의 원성은 고스란히 내 몫"

 

22.11.26. 서울 소재 어느 파스타 가게의 가격 인상 안내문. [사진=고문진 기자]

지난 4일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원유 기본 가격을 1ℓ당 996원으로 전년 대비 49원 올릴 것을 공표, 지난달 16일부터 올해 말까지는 협상 지연으로 리터당 3원 더 올린 999원으로 결정하면서 현재 대형마트 기준 흰 우유 1,000ml 가격은 평균 6% 인상된 2800원 후반대로 올랐다.

이에 카페나 베이커리 등 관련업 소상공인들 역시 가격 인상 압박이 매출 감소로 이어질까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전남 담양에서 개인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30대 초반 김 모씨(여)는 대기업 브랜드 베이커리 제조 기사로 일하다가 5년 전 퇴사하고 본인 가게를 차렸다.

김 씨는 "워낙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많아 차별화된 전략으로 프리미엄 생크림과 우유를 사용한다는 고급스런 슬로건을 내세워 간판을 걸었는데 원유값 인상에 더는 마진 유지가 어려울 것 같아 잠시 휴업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단골 중에 넌지시 사장님 물가 올라서 저렴한 재료로 바꾸신 거 아니냐는 농담에 웃어넘겼다"며 "아직 아무런 변화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미리서 저렇게 걱정하는 분이 그분 한 분만 있는 건 아닐 텐데, 이 마당에 프리미엄을 내려놓고 저렴한 재료로 바꿔야 할지 제품 가격을 인상할지, 결정을 내리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파스타 집을 운영하는 30대 후반의 한 모씨(여)는 "하루에 10그릇을 판다고 했을 때 그 중 6~7그릇은 시그니처 메뉴인 크림 파스타라 유제품 공급받는 업체에서 가격 인상 안내문을 받자마자 가게 전 메뉴 인상을 감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유제품 뿐 아니라 각종 수입 식재료 등의 가격 인상에 최소한의 비용을 계산해서 올렸다"며 "그럼에도 간혹 손님들의 볼멘소리를 듣는데 가게 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정부는 밀크 인플레이션 우려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나 제과제빵 전문점 가격 동향을 파악한 결과 인상 움직임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국제 곡물 가격 등 생산비 상승 영향으로 해외 원유 가격도 상승 추세에 있다"면서도 "가격 상승에 따라 커피, 빵류 등 연쇄적인 가격 인상 우려가 있으나, 추가적인 가격 인상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하지만 밀크 인플레이션에 노출된 관련업 소상공인들을 인터뷰하며 이런 정부의 입장 표명은 디테일함이 생략된, 보다 서민의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은 아쉬움 가득한 발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물가로 인해 얇아지는 주머니 사정으로 단골 가게의 가격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고객도, 그런 고객들의 원성을 들어가며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소상공인도 모두 서민 아닌가.

그칠 줄 모르는 물가 인상으로 등 터지는 서민의 목소리에 보다 귀 기울인, 진정 '서민 경제'를 위한 뾰족한 수가 속히 나타나지 않는다면 각계각층 서민들의 속 앓이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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