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7.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어느 프렌차이즈 카페에 붙은 안내문. [사진=고문진 기자]
22.12.07.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어느 프렌차이즈 카페에 붙은 안내문. [사진=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얼마 전 일회용품 사용 규제 시행 관련 취재를 하던 중 모 프렌차이즈 카페에 붙은 안내문을 보았다.

"종이 빨대는.. 현재 본사에서 제작 중입니다. 곧.. 종이 빨대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이사이 찍힌 점(.)에 송구스러움과 강조의 의미를 가득 담은 해당 문구를 보며 웃음이 새어나옴과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명색에 프렌차이즈라면서 언제부터 시행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준비가 안 되다니, 저걸 변명이라고 붙였나'

지난 달 24일부터 계도 기간이 시작된 건 맞지만, 환경부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규제에 대해 얘기를 했고 이에 발맞춰 굵직한 프렌차이즈 카페들은 일찍이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 국내 매출·매장 수로 TOP 10안에 드는 브랜드인데 좀 굼뜨긴 했다.

그리고 둘째 '종이 빨대 말고 다른 친환경 빨대도 많은데 이왕 늦은 거 다른 종류를 시도해보는 건 어때 OO'. (OO는 해당 프렌차이즈 이름이다.)

지난 9월에 작성한 기획기사 「환경 생각했는데 커피맛 놓치고, 탄소배출량까지…반쪽 친환경 아이템 ‘종이 빨대’」에도 적었듯, 종이 빨대가 음료의 맛도 해치고 플라스틱 빨대보다 탄소배출량까지 많아 개인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아이템이라 생각한다.

특히 종이 빨대 특유의 냄새와 맛 해침이 불편해서 테이크 아웃의 경우 음용형 리드가 아니면 뚜껑을 열어 마시고 매장 내에서는 빨대를 안 쓴다.

얼마 전에는 종이 빨대가 비치된 카페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버블이 든 밀크티를 시켰다가 빨대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버블을 먹을 재간이 없어 점원에게 매장용 숟가락을 달라고 했다.

무튼 짧지만 강한 인상을 심어준 안내문으로 인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다 어느 영화 속 이 대사까지 떠올리게 됐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하나. 개인적인 하나.. 그리고, 비밀의 하나..."

영화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대사인데 쓰고 보니 여기에도 점이 많다.

미리 말하자면 여기서 공적인 하나를 '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비밀의 하나는 가족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거나 혹은 그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은 사생활. 마지막 개인의 하나는 앞에 두 영역을 뺀 나머지 정도로 이해했다.

 

완벽한 타인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완벽한 타인은 2018년 개봉작으로 드라마 PD 겸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이재규 감독의 연출작이고 출연 배우 라인업이 화려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심지어 목소리 출연에 이순재 선생님을 필두로 라미란, 조정석 등 스크린과 무대, 브라운관에 종횡무진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완벽한 타인은 리메이크작으로 2016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가 원작이다.

퍼펙트 스트레인저는 개봉 후 3년 만에 우리나라를 비롯 그리스, 인도, 스페인 등 18개국에서 리메이크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이기에 국경을 초월한 리메이크 열풍이 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완벽한 타인 포함 리메이크작 두 편과 원작을 챙겨 봤는데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속의 찰짐은 완벽한 타인이 제일이었다. 팔이 안으로 굽었다기보다는 언어의 장벽쯤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빙판 위 개기월식을 기다리는 다섯 소년을 보여준다. 이중 순대라는 친구를 제외한 네 친구가 34년 뒤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소가 아닌 공간으로 표현한 이유는 영화 속 주 무대가 되는 석호와 예진의 집에서 어느 순간 시공간을 초월하는 한 시점이 나오기 때문인데 이게 맞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상의 디테일한 설명은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생략하겠다.

어쨌든 석호(조진웅 역)와 예진(김지수 역) 커플이 집들이 겸 모임을 주도한다. 여기에 태수(유해진 역)와 수현(염정아 역) 커플, 준모(이서진 역)와 세경(송하윤) 커플 그리고 영배(윤경호 역)가 참석한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가지고 개인 생활을 꾸려가던 그들이 수 십 년 만에 한 데 모여 문제의 '스마트폰 진실게임'을 시작한다. 비밀이 많은 누군가에겐 잠금 해제가 마치 수류탄 핀을 뽑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

그동안의 관계가 산산조각이 날 일촉즉발의 순간인 듯 보이지만, 실은 이들 모두 개인 혹은 다수를 향한 저마다의 응어리를 안고 있었고, 숱한 세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장면마다의 의미를 분석하는 등 생각을 많이 하고 볼수록 다소 속이 상할 수 있겠다는 입장이라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보길 추천한다.

저 마음가짐으로 본다면 기대 이상의 볼거리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식탁에 코스요리로 올리오는 속초 음식과 곁들임 술,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감동 포인트로 꼽는다.  그러고 보니 물곰탕 한 그릇이 생각나는 계절이 왔구나.

좋은 대사도 많이 나온다. 영화 소개 글에 그나마 덜 언급된 대사 중 기억남는 걸 꼽자면, "거짓말은 남이 아니라 너 자신을 속이는 짓이야. 결국, 망가지는 건 너야".

평소 "말 속에 답이 있다"는 문구를 좋아하는데 저 대사는 극 중 예진이 딸에게 하는 말이지만, 예진 자신에게 답을 알려주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래서 왜 빨대를 보며 그 대사가 생각났느냐' 하면 빨대 앞에서 다중적인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공적으로는 일회용품 사용규제에 대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실효성 논란 등에 대해 취재를 하는 기자의 입장, 개인적으로는 종이 빨대 싫어서 안 쓰고 아이 등원할 때 우유에 사탕수수 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빨대를 꽂아 주는 엄마의 입장, 비밀적으로는 그냥 되는 대로 편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삼중적인 모습.

아무튼 하루빨리 카페 사장님도 손님도 일회용품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길 바라며 영화 완벽한 타인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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