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부로 시행되는 '소비기한 표시제'... 유통기한 표기 38년 만에 마침표
소비자 중심 표기 방식으로 소비자 편의 증대에서부터 음식물 폐기 비용 및 자원 낭비 줄일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 부각
반면, 낮은 소비자 인식과 관련 업계의 안전 문제 관련 소비자 민원 증가 우려도

 

22.12.12. 서울시 성동구 소재 모 대형마트에서 달걀을 고르는 이용객. [사진=고문진 기자]
22.12.12. 서울시 성동구 소재 모 대형마트에서 달걀을 고르는 이용객. [사진=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38년 만에 유통기한 사라지고 소비기한이 온다."

2023년 1월 1일부터 시중에 유통되는 각종 식재료 및 가공식품 등에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이 표기된다. 우유 등 유제품 군은 제외된다.

지난 2021년 7월 국회에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의 내용이 담긴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 법률에서 위임한 일부 품목과 해당 품목의 시행 시기 등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에 담겨 있다.

이를 중심으로 내년부터 본격 시행 예정이지만, 아직 유통기한에 익숙한 국민의 인식 전환과 관련 업계의 준비 등을 이유로 1년의 계도 기간을 가진다.

우유 등 유제품의 소비기한 표시는 2031년부터 적용된다. 유제품은 위생적 관리와 품질 유지를 위해 '냉장 보관기준 개선' 등에 준비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8년 늦게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제공한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설정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기한 설정이 완료된 23개 식품유형 80개 품목의 참고값이 나와 있다.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변경 시 각 식품유형군의 평균 증가율은 아래와 같다.

▲농후발효유, 베이컨류 등 2개 유형 10% ▲간편조리세트, 묵류, 생면, 즉석섭취식품(비살균) 등 4개 유형 20% ▲두부, 신선편의식품, 전란액 등 3개 유형 30% ▲소시지, 어묵, 유산균음료, 즉석섭취식품(살균) 등 4개 유형 40% ▲가공유, 빵류, 영유아용 이유식, 프레스햄, 햄 등 5개 유형 50% ▲크림발효유, 발효유, 과채주스, 과채음료 등 4개 유형 70% ▲ 과자 등 1개 유형 80%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인 유형은 베이컨류로 해당 유형의 소비기한은 기존 유통기한 25일에서 3일(12%) 증가한 28일로 표기된다. 반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과자는 45일에서 36일(80%) 증가한 81일로 표기된다.

이어서 두부는 17일에서 23일(36%), 어묵은 29일에서 42일(44%), 빵류는 20일에서 31일(53%), 과채음료는 11일에서 20일(76%) 증가되어 표기된다.

◆ '철 지난' 유통기한 표기 방식 내려놓으니 예상되는 긍정 효과

유통기한은 제품을 제조일로부터 시중에 유통할 수 있는 기한, 다시 말해 유통업체 입장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며 영업자 중심 표기 방식(Sell-by-date)으로 이해하면 된다.

반면, 소비기한은 소비자가 실제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 다시 말해 식품을 섭취해도 건강 등에 이상이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기간을 의미하며 소비자 중심 표기 방식(Use-by-date)으로 이해하면 된다.

유통기한의 경우 식품이 상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소비기한의은 80~90% 앞선 기간으로 잡는다. 예를 들어 10일 후 식품이 상하기 시작한다면 해당 식품의 유통기한은 6~7일, 소비기한은 8~9일이다.

식품에 기재된 방법 등으로 보관만 잘하면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도 문제없이 섭취할 수 있지만, 기업은 유통기한을 넘길 경우 상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없어 그로 인한 폐기 제품이 발생한다.

소비자 역시 평소 소비기한에 대해 인지하고 있거나 저렴한 가격 등의 이점을 생각해 자발적으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통기한에 가까워진 멀쩡한 상품을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1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통기한에 따른 식품 폐기 손실 비용이 생산 단계에서 5,900억 원, 가정 내 폐기 비용 9,500억 원, 도합 1년에 음식물 폐기에 버려지는 비용만 1조5,400억 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한편, 지난 2018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는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을 삭제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식품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 품질유지기한, 냉동기한 등을 구분해 사용했고, 일본 역시 오래전부터 유통기한이 5일 이내로 짧고 쉽게 상하는 음식을 소비기한으로, 그보다 긴 것은 상미기한(賞味期限)으로 구분해 표기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소비기한의 긍정 효과에 초점을 맞춰 일찍이 제도 수정 및 시행에 나선 데 비해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제대로 된 제도 시행에 나선다면 식품 폐기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수천억 원대의 비용 및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국제적 추세 반영을 통한 국내 생산 식품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업계의 전망도 관측됐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소비기한 표기를 통해 명확하게 섭취 가능 기한을 제공 받음으로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마트 이용객 이 모 씨(37, 여)는 "평소 통조림이나 라면을 제외한 모든 식품을 웬만하면 냉장·냉동 보관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사온 지 며칠 됐다 싶으면 찜찜해서 바로 버린다"며 "음식이 아깝지만, 배탈 날까 걱정돼서 다 버렸는데 (소비기한이) 표시된다면 마음 편히 보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모 프렌차이즈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권 모 씨(56, 남)는 "매장 이용객 중 식빵 등 식탁에 며칠 두고 먹는 제품을 구매할 때 언제까지 먹어도 되는지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해당 제도에 대해 인식만 잘 잡히면 제품 표기만 보고 (소비기한을) 바로 알 수 있으니 점주 입장에서도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시행 한 달도 안 남았는데 "현저히 낮은 소비자 인식"... 관련 업계, 안전 문제 관련 소비자 민원 증가 우려도

일부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안전 문제로 인한 소비자 민원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부정적 의견을 내세웠다.

기업에서 소비기한 설정 실험을 시행하여 결과치를 정하는 것이기에 기업 자체적으로 식품 섭취 가능 날짜를 설정하는 자체가 소비자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

더불어, 식약처에서 제공한 '식품유형별 소비기한 설정 보고서'를 참고하여 그 기준보다 짧게, 보수적으로 소비기한을 설정한다고 하면, 과연 기존 유통기한 표기 날짜와 얼마나 차이가 나겠느냐는 주장이다.

또한, 소비기한이 냉장보관을 기점으로 하기 때문에 제조·유통·보관 등 식품을 취급하는 모든 단계에서 식품에 맞게 철저히 적정 온도를 준수해야 하는데 대형마트, 편의점 등 대형 유통업체의 경우 가능하겠지만, 영세업체의 경우 어려울 수 있고 그로 인해 식품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모든 제도 시행에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인지'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판매자 뿐 아니라 소비자, 즉 구매자 역시 소비기한 표시제의 당사자임에도 아직까지 해당 제도에 대한 인지 혹은 이해도가 많이 부족한 현실이다.

마트 이용객 정 모 씨(35, 여)는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고, 이어진 설명에 정 씨는 "단어도 생소하고 솔직히 유통기한에 익숙한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괜한 혼란만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객 김 모 씨(28, 남)는 소비기한 표시제에 대한 질문에 "잘 모른다"고 대답했고, 이어진 설명에 김 씨는 "취지는 좋은데 익숙하지 않아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며 "공익 광고처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광고를 해주면 그나마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식약처는 1년의 계도기간 이후 2024년에는 소비기한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을 경우 제품 폐기부터 시정명령과 영업 허가·등록 취소 처분을 내리는 등의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된 소비기한 표시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계도기간 안에 명확한 기준점이 세워져야 하며, 판매자도 구매자도 제도 당사자인 모든 국민이 해당 제도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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