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요리 사진.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칠면조 요리 사진.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미련 가득한 눈길로 순식간에 날아간 달력의 빨간 글씨를 바라보며 무거운 출근길을 맞이한 모든 직장인에게 응원의 박수가 필요한 수요일이다.

사실 응원의 박수보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반차 혹은 오후 출근 정도의 복지가 일부 회사를 넘어 범국가적 차원에서 적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지각할까 불안한 마음에 5분 단위로 울리는 기상 알람에 선잠을 잘 필요도 없고, 몰려오는 식곤증을 이기기 위해 과량의 카페인 충전을 할 필요도 없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회사 생활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일개 직장인의 푸념을 뒤로하고 지난 연휴 서울역으로 취재를 갔다가 만난 광장의 비둘기들을 보며 안녕 프란체스카의 닭둘기가 생각났다.

잠깐 닭둘기의 본적을 설명하기 이전에 비둘기의 먼 친척쯤 되는 칠면조 얘기를 먼저 꺼내보겠다.

2020년 겨울 코로나 19의 대확산이 한창일 당시 '다이어트에 돌입한 영국 칠면조'라는 주제의 해외 토픽을 본 적이 있다.

미국과 영국은 크리스마스 등 큰 행사에 빠지지 않고 준비하는 음식이 바로 칠면조 구이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추석에는 송편, 설날에는 떡국 정도가 되겠다.

당시 토픽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영국 정부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6명 넘는 모임을 금지하면서 방역 지침에 따라 사육업자들이 제한된 인원수에 알맞게 먹기 좋은 크기로 칠면조를 사육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코로나 19 이전만 해도 영국에서는 최소 10명 이상은 족히 먹을 정도의 큰 칠면조가 인기였으나, 코로나의 장기화는 칠면조에게까지 다이어트의 스트레스를 안겨 주었다.

칠면조가 체중감량에 힘써야 하는 지금과는 상반되게 안녕 프란체스카 속의 닭둘기는 포동포동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간다.

 

안녕 프란체스카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안녕 프란체스카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이미지]

'안녕, 프란체스카'는 지난 2005년 MBC에서 방영된 시트콤으로 당시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한 건 아니지만, 뱀파이어라는 독특하고도 비현실적인 캐릭터 설정에 플러스 현실 고증 잘 살려낸 찰진 대사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해 시즌 3 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프로그램이다.

각 시즌별로 다양한 재미를 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시즌 1이 제일 흥미로웠다. 

시즌 1~2는 등장인물이 동일하다. 먼저 뱀파이어 가족을 소개하자면 행동 대장을 맡고 있는 프란체스카(심혜진 분), 실질적 리더이자 정신적 지주 왕고모 소피아(박슬기 분), 지성을 맡고 있는 닭대가리 켠(이켠 분), 미모를 담당하는 엘리자베스(정려원 분) 그리고 소피아의 배우자이자 극 중 현존하는 뱀파이어들의 대교주 안드레(故 신해철 분)가 있다.

이어 인간계 인물로는 서울에 거주하는 만년 대리이자 불운의 아이콘 두일(이두일 분), 20대에서 맥시멈 47살을 오가며 나이도 과거도 미스테리한 집주인 안성댁 박여사(박희진 분) 정도가 되겠다.

시즌 1 첫 에피소드에서는 뱀파이어 가족과 인간 이두일의 첫 만남을 보여준다.

2,000년 넘게 인간 세상을 지배했던 뱀파이어들이 더는 설 곳도 없고 씨가 말라가던 찰나 전 세계에 퍼져있는 안전가옥을 찾아 주인공 뱀파이어 가족도 루마니아를 떠난다.

원래 목적지는 일본의 도쿄 안전가옥이었으나, 우유 대신 닭피를 먹여 키운 탓에 살짝 많이 모자란 켠의 실수로 대한민국 인천항에 도착한 뱀파이어 가족은 이 사실을 모른채 부둣가 복집 앞에 가서 일본말로 '도쿄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만, 사장님 당연히 알 길이 없다.

같은 시간, 남산 근처 어느 벤치에서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는 두일이 보인다.

청혼 반지를 꺼내는 두일에게 상대는 "나이 40에, 직급은 대리에, 집 한 칸 없이 월세 옥탑방에 사는 남자, 부모님 재산도 물려받을 재산도 없는 남자가 오빠야"라는 시린 멘트를 시전하며 프로포즈를 거절한다.

대차게 차인 두일 속이 쓰릴 법하지만, 상대 앞에서 끝까지 멋진 모습을 유지하며 "이 반지는 네가 아니면 아무도 임자가 아니야"라는 대사와 함께 반지를 날리는데 12개월 할부 영수증을 생각하며 이내 주우러 가는 두일이다.

나뭇가지에 걸린 반지를 잡으려다 낙상한 두일을 발견한 프란체스카는 '인간을 물지 말라'는 대교주의 명을 어기고 두일이를 물게 된다. 그렇게 지극히 평범한 인간 이두일은 하루아침에 뱀파이어가 되고 뱀파이어 가족에 합류하게 된다.

프란체스카만 봐도 치렁치렁한 머리와 검정 드레스, 당최 어디에서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지만 열 받을 때마다 꺼내 드는 빨간 도끼, '박봉곤'이라는 닉네임까지 비범하기 그지없는 이들이지만, 두일이와 함께 펼치는 뱀파이어 가족의 고군분투 서울살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지극히 평범한 나의 일상 혹은 마음 한 켠이 그대로 녹여진 에피소드에 피식 웃음이 나고 아련한 공감을 자아낸다.

극 중 프란체스카는 뛰어난 요리 실력을 자랑하는데 여기서 닭둘기, 즉 포동한 비둘기들은 두일이네 궁한 가계 상황에 무상으로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좋은 식재료로 등장한다.

동물 보호 차원에서 본다면 다소 잔인하게 비칠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 드라마 속 가상의 설정임을 다시 한 번 밝히며 아무튼 이 시트콤에서 닭둘기는 이렇게 중요한 존재이다.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어느새 길거리 민폐 아이콘으로 변질된 것도, 코로나로 인해 하다 하다 칠면조까지 다이어트에 열을 올려야 하는 상황도 새삼 모든 것에 '참 세상은 요지경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요지경 세상 속에, 나라는 존재를 잃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강철 마인드와 용기 그리고 웃음을 선사하는 주옥같은 작품이다.

기름진 명절 음식 야무지게 먹고 얼굴 좀 부으면 어떤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도 있듯, 빛의 속도로 날아간 연휴에 너무 크게 아쉬워하지도, 늘어난 몸무게에 스트레스받지도 말고 그저 지금 이 순간 퇴근할 생각에 즐거운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안녕 프란체스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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