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실질임금 2.7% 감소... 고물가와 낮은 임금상승률로 체감 경기 어려워
MZ는 소비 양극화, 4050은 자녀 학원비에 최다지출

 

지출 절약 이미지. [이미지출처=미리캔버스]
지출 절약 이미지. [이미지출처=미리캔버스]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거지방에 있는 우리는 쓸 돈이 없는 것도 맞지만, 나를 위해 안 쓰는 것이기도 해요”

서울에 거주하는 20대 중반 김 씨(여)는 석 달 전부터 다니던 아르바이트를 관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재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느라 지출비가 늘어 생활이 빠듯해진 김 씨는 다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도시락을 챙겨다닌다.

어린데 절약정신 투철하다는 주변 칭찬에 뿌듯함도 잠시, ‘쓰기 위해 열심히 버는 거 아니냐’, ‘이게 바로 나심비(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지갑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소비 심리)’ 등을 남발하며 시원하게 카드를 긁는 친구들을 보며 김 씨는 한동안 우울감이 밀려왔다.

 

카카오톡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뜨는 오픈채팅 목록. [사진출처=카카오톡 화면 캡쳐] 
카카오톡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뜨는 오픈채팅 목록. [사진출처=카카오톡 화면 캡쳐] 

나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인가 싶은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혔던 그녀의 멘탈을 깨워준 건 ‘거지방’이었다.

주변 지인의 권유로 오픈채팅 거지방에 들어가게 됐는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불특정 다수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보다 더 짠내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위로를 받고 원동력을 얻은 것이다.

김 씨는 “거지방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연대감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라며 “정말 없어서 못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치관의 차이로 모을 수 있을 때 정말 안 쓰고 있다가 혹시 모를 나중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안 쓰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3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자료출처=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3월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 [자료출처=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상용근로자 1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89만 7000원으로 전년 동월(383만 7000원) 대비 6만 원(1.6%) 증가했다.

종사자 지위별로 보면 상용근로자는 지난해 3월 405만 원에서 올해 3월 413만 원으로 8만 원(2.0%), 임시·일용근로자는 같은 기간 174만 5000원에서 176만 8000원으로 2만 3000원(1.3%) 올랐다.

반면, 올해 1분기 누계 월평균 명목임금(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실제 지급한 금액)은 416만 4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만 1000원(2.0%) 증가했으나, 물가수준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377만 3000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0만 3000원(2.7%) 감소했다.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하다 올해 2월 잠시 반등했던 실질임금이 다시 하강 곡선을 보이고 있다. 작년보다 실질임금 감소는 둔화했지만, 여전히 높은 물가상승률과 그에 반해 낮은 임금상승률 때문에 체감 경기는 더욱 어렵다.

전반적인 흐름이 이러하니 경제 활동을 하는 전 연령층에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소비 형태가 다양한 변주로 나타나고 있다.

◆ ‘소금과 명품 사이’... 소비 양극화 두드러지는 MZ의 소비관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 등 ‘지출비 0원’을 목표로 하는 MZ세대의 움직임은 해를 거듭할수록 반경을 넓히고 있다. 반면, 명품이나 가전제품 등에 큰돈을 한 번에 지출하는 플렉스 소비층 역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개성을 중시하는 MZ만의 색깔이 소비행태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20대 후반 직장인 이 씨(여)는 매일 만보 걷기를 통해 건강과 앱테크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3교대로 따로 운동할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당장 내년에 있을 타지 발령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독립을 해야 하기에 뭐라도 아끼고 모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그녀는 핸드폰에 만보기 어플만 3개를 깔아두었다.

이 씨는 “핸드폰이 과부하로 뜨거워지지만 않으면 더 깔고 싶은데 3개도 나름 쏠쏠하다”며 “올라가는 걸음 수를 보며 일차는 건강을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이차 쌓이는 적립금을 보며 부지런히 모아 공짜로 마실 커피 한 잔을 떠올리며 행복하다”고 말했다.

또한, 쉬는 날에는 블로그 체험단 활동을 통해 맛집을 탐방하거나 신제품 식음료를 먹어본 후 후기를 남겨 식비 지출을 줄인다. 소정의 수수료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고스란히 적금 통장에 넣어 무지출을 넘어 유수입을 만드는 것이다.

30대 직장인 배 씨(남)는 ‘앰비슈머(ambisumer)’로 소비 분야별로 고가품과 저가품을 적절히 구매하며 만족감을 얻는다고 했다. 앰비슈머는 가치관의 우선순위에 있는 것에는 소비를 아끼지 않는 대신, 우선순위에 없는 것에는 소비를 아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배 씨는 식비와 옷을 포함한 장신구 등에는 최대한 지출을 줄이지만, 문화생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고가의 턴테이블을 산 그는 “개인적으로 먹고 입는 건 일회성에 그치는 행위라고 느껴지는데, 좋아하는 공연을 보거나 음반 등을 수집하는 건 눈으로 보이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우리가 원조 짠순·짠돌이”... 4050세대에도 공존하는 거지방의 연대감

“물가가 불안정하면 직격타 맞는 게 우리 주부들이잖아요.”

10대 자녀 둘을 키우는 50대 주부 김 씨(여)는 한 달 넘게 냉장고 파먹기를 통해 저녁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는 젊은 세대들처럼 따로 커뮤니티는 안 해도 엄마들끼리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보면 거지방과 다를 게 없다”고 웃었다.

주부들의 대화 주제에 빠지지 않는 식단을 화두로 던지면 “오늘도 냉장고 파먹기 해야지”, “엊그제 핫딜로 사과 두 상자 샀는데 당분간 다른 간식은 없다”, “명절에 받은 김이랑 참치 세트 조만간 똑 떨어질 것 같은데 걱정” 등 식비를 줄이기 위한 주부들의 고민이 여실히 보인다.

 

2022년 초중고사교육비조사 결과.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 원으로 전년도 약 23조 4천억 원에 비해 2조 5천억 원(10.8%) 증가했다. [자료출처=통계청]
2022년 초중고사교육비조사 결과. 2022년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 원으로 전년도 약 23조 4천억 원에 비해 2조 5천억 원(10.8%) 증가했다. [자료출처=통계청]

각종 핫딜, 중고거래, 품앗이 등을 통해 가계 전반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큰 지출이 있다면 바로 자녀의 교육비이다.

최근 자녀를 사설 초등학교에 보낸 40대 워킹맘 정 씨는 “고물 자동차를 수년 째 끌고 다니는데, 주변에서 이제 차 바꿀 때 됐다는 말을 자주 들어도 그 돈 있으면 아이 교육에 더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남 광주에 거주하는 40대 워킹맘 이 씨는 “첫째 키울 때만 해도 영어 유치원은 수도권 잘 사는 사람들이나 보내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막둥이 유치원을 알아보는 중에 주변 엄마들이 다 관심 가지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더라”며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보다 더 치열해서 상담 일정 잡기도 어렵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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