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값 내렸지만, 제품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유
전문가들, ‘하방경직성’에 수반되는 부작용 우려… “슈링크플레이션, 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서울 성동구 소재 모 대형마트 라면 코너. [사진=고문진 기자]
서울 성동구 소재 모 대형마트 라면 코너. [사진=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정부의 압박으로 당장에 라면 값을 인하한다고 해도,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소비자가 다시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는 기간이 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지난 주말 추경호 부총리의 ‘라면 값 인하’ 발언에 관련 식품기업에서 일제히 가격 검토에 나섰지만, 당장의 인하는 어렵다는 입장이고, 이에 지난 20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서는 성명서를 발표해 신속한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여론 역시 원재료값이 내려가면 제품가도 같이 내려가는 게 맞지 않느냐는 반응이 주를 이르는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하방경직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우려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석병훈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서 하방경직성에 수반되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했다.

하방경직성이란,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수요가 감소하거나 공급이 증가할 경우 하락해야 할 가격이 어떠한 원인에 의해 하락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즉, 한번 가격이 결정되고 나면, 경제 여건이 변화해도 가격이 쉽게 하락하지 않는 현상을 의미한다.

원래 기업에서 가격을 결정할 때, 원재료값이 인상됐다고 해서 그에 연동해서 제품가가 바로 인상되는 게 아니라, 인상될 때까지 시차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라면을 만드는 데 밀가루만 들어가는 게 아니고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나 마케팅 등의 기타 제반 비용과 기존에 있던 재고 소진까지 고려할 요소가 많고, 이 모든 걸 반영해서 제품가를 책정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인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제품가를 인하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또, 라면처럼 가격 탄력성이 낮은 생필품은 가격을 올릴수록 기업의 수익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제품가가 10% 올랐을 때, 수요가 10% 이상 떨어지면 손해인데, 가격 탄력성이 낮은 품목은 가격 인상률 이상으로 수요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기업은 ‘이윤도 증가하는데 굳이 내가 왜 제품가를 내려야 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미 올린 제품가를 다시 내리려면 제반 비용이 들고,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인건비도 상승할 것이고, 임금이 올라가는 속도는 제품가 인상 속도보다 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차라리 가격을 올려놓은 김에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래서 하방경직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제품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 법칙에 의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이 돼야 되는데, 정부가 압력을 행사해 기업이 눈치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낮추는 이런 상황은 자유시장 경제에서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며, (기업 입장에서는) 검토할 사안이 많기 때문에 상당 기간의 시차가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두 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그로 인한 부작용이 수반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석 교수는 슈링크플레이션을 언급하며, 이로 인해 소비자는 실질적으로 라면 가격이 인상된 것과 같은 효과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기업들이 제품의 가격은 기존대로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 및 중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어 생산하여 간접적으로 가격 인상의 효과를 거두려는 전략으로, 라면의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라면의 크기를 줄여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라면 하나만 끓여도 배가 불렀는데, 사이즈가 줄어들면 가격은 동일할지라도 라면을 두 개는 끓여 먹어야 같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또, 석 교수는 “당장의 가격 인하가 소위 말하는 착시효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영원히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기에, 나중에 통계 물가가 잡힌 줄 알고 통제를 풀어주는 순간 기업은 누적된 손실을 만회할 정도로 가격을 더 크게 올리려고 할 것이다.

그럼 라면뿐 아니라 밀가루가 들어간 다른 제품도 가격 통제에 들어가게 된다면 모든 품목이 일제히 지금 봤던 손해를 다 만회할 정도로 큰 폭의 가격 인상을 하는 시기가 올 것인데, 그때의 소비자 물가지수는 다시 상승할 거고 한국은행은 물가가 잡힌 줄 알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려고 했다가 다시 소비자 물가가 뛰니까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석 교수는 “물가가 잡힌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한국은행도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할 수 있는 시기가 늦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시 고금리·고물가로 고통받는 기간이 길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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