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난 라면에 이어 이번엔 유제품 가격 인상 자제 권고
유업계, “협상 지켜보는 중”, “흰 우유 적자 폭 심화 우려”… 전문가, “제도 변화가 우선”

23.07.28. 서울 동대문구 소재 모 편의점 유제품 코너. [사진=고문진 기자]
23.07.28. 서울 동대문구 소재 모 편의점 유제품 코너. [사진=고문진 기자]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서민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손길이 지난 밀가루·라면에 이어 이번엔 유제품에 닿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이하 농식품부) 지난 7일 서울우유와 함께 한국유가공협회 회원사인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유업체 14곳을 모아 가격 인상 자제를 권고했다.

이에 매일유업에서 커피 제품 가격 인하를 결정했으나, 이는 국제 원두 가격 하락을 반영한 결과이며, 원유(우유 원료)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므로 유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업체 간 원유 가격 협상 결과가 오는 19일 나올 예정이었으나, 18일 업계 관계자는 <시사프라임>고 통화서 “아직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마치 최저임금처럼 원유 가격 협상도 늘 파행이 되던 거라 어떻게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아직 협상 중인 내용이라 거기에 따라 가격을 올리겠다, 안 올리겠다 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면 업계는) 정부가 어느 정도 숨통을 트여준 게, 우선 밀가루 가격이 내려갔으니 라면값도 내리라는 논리 자체가 일리가 있다. 그런데 원유 가격 같은 경우는 범위 내에서 정하기 때문에 당연히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부도 ‘원유 가격이 오르긴 오를 건데 유제품 가격은 올리지 마’라는 입장이기에 라면 업계와는 또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특히 원유값은 낙농가를 설득해야 하는 부분이기에, 정부에서 기업을 압박하는 것처럼 농민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라는 의견을 보였다.

더군다나 원유 비중이 높은 흰 우유는 대부분의 유기업에서 적자 양상을 보이는 와중에, 재료 가격이 올랐는데 제품가를 올릴 수 없게 되면 흰 우유에 대한 적자폭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 상황에 대해 이화여대 경제학과 석병훈 교수는 <시사프라임>과 통화서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밀크플레이션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려면 원유가 연동제를 시장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바꾸는 등의 제도의 단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마시는 우유, 그리고 요거트·버터·치즈 등의 유제품은 우선 낙농가가 소로부터 짜낸 우유, 즉 원유를 유업계에서 구매한 후 가공해서 파는 것인데, 이 원유에 대해 정부가 지난 2003년 낙농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낙농가의 생산 비용을 반영해 원유 가격을 정하는 ‘원유가 연동제’와, 제조사에서 의무적으로 일정 계약 물량을 매입하는 ‘의무 매입 쿼터제’를 도입했다.

이에 대해 석 교수는 “원유 가격을 시장의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 정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래는 낙농가도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비용을 줄이고자 노력을 할 텐데, 원유가 연동제의 기본 취지가 생산 비용이 늘어나면 그에 따라 정부에서 가격을 알아서 올려주겠다는 거니 굳이 비용 절감을 하고자 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고 계약된 물량은 (유업계)에서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돼 있으니 (원유)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든 간에 상관없게 되니 소위 말하는 고비용 원유 생산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제도의 도입이 낙농가의 소득 증진 및 낙농 산업 보호에 기여를 했는가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유업계 입장에서는 마시는 용도로 쓰이는 음용 원유(음용유)는 보관 기간 등을 고려하면 수입하기가 어려운 반면, 가공 원유(가공유)는 원유가 연동제에 의해 타국의 원유를 수입해서 대체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요거트나 치즈 등에 들어가는 가공유 수입이 계속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우유 자급률이 2000년대 초반 77%에서 20년이 지난 지금은 44%로 떨어졌고, 결국엔 국내 낙농가를 보호한다는 명분도 달성하지 못한 게 되는 것이다.

석 교수는 “흰 우유에 대한 수요가 주는 반면, 원유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으니 유업계에서도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제품가를 올리지 않을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언급했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우유 가격만 계속 상승 중이라 수요는 더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면서, 올해 정부에서 원유가 연동제를 개선한 용도별 차등 가격제를 처음 시행하기로 밝혔다.

이를 통해 음용유 가격은 더 높게 책정하고 가공유는 낮게 책정해서 그동안의 가공유 수입을 자급화로 돌리겠다는 취지인데, 이 또한 시장의 원리 수요 공급 법칙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정해진 협상 범위의 최저 인상 폭으로 결정된다 할지라도 전년 동기 대비 6.9% 인상이 되는 것인데, 그러면 유업계 역시 지금 당장은 정부 눈치가 보여서 이윤 감소를 감수한다고 해도 언젠가 정부가 가격 통제를 풀게 되면 지금의 이윤 감소 또는 손실 발생 분까지 만회할 정도로 큰 폭의 가격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며 “그때 가서 원유가 들어가는 커피, 생크림, 빵, 과자 등의 가격이 다 올라가는 밀크플레이션이 다시 생겨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원유 가격은 ℓ당 69∼104원 범위에서 인상 폭이 정해질 전망이다. 최저선인 69원 오른다고 해도 원유값 상승 폭은 2년 연속 최대 폭을 경신하게 된다. ℓ당 원유 가격은 2018년 4원, 2021년 21원, 지난해 49원 오른 바 있다.

지난해 원유 가격이 ℓ당 49원 올랐을 때, 유업계에서 우유 가격을 약 10% 올리면서 지난해 말 흰 우유 1ℓ 소비자 가격은 2,800원 안팎으로 인상됐다. 올해는 인상폭이 더 커질 전망으로, 흰 우유 가격은 1ℓ들이가 3,000원을 넘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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