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볼 이미지. [이미지출처=미리캔버스]
하이볼 이미지. [이미지출처=미리캔버스]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평소 도수 높은 독주를 즐기던 애주가들도 무더위로 인한 갈증에 맥주의 시원한 자태를 뿌리치지 못하는 지금은 7월 중순의 한여름이다.

거실 바닥에 무중력 상태로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절로 땀이 나는 이 날씨에 독주는, 한 모금 들이키는 상상만으로도 삐질삐질 땀이 나게 하는 존재이기에 주류 업계의 여름은 독주 비수기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9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를 보면 대표적인 독주로 불리는 위스키의 올해 상반기 수입량은 1만 6,900톤(t)으로, 지난해 기준 동기간 대비 50.9% 증가, 하반기 수입량인 1만 5,800t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과 2022년 상반기 비교 63.8%의 상승률에 이어 2년 연속 과반 이상 증가한 수입량이고, 2000년 이후 반기 기준 최고치이다.

올해 상반기 위스키 수입액 역시 1억 3,000만 달러(약 1,665억 원)로 2021년 동기간(7,600만 달러)과 비교하면 71.1%의 증가폭을 보이며, 이로써 비수기 프레임을 깬 독주의 여름 독주(獨走)가 순항세를 이어가고 있다.

독주의 흥행 비결은 단연 MZ 세대의 호응에 있다. 흔한 듯 흔하지 않게, 유행과 나의 개성을 믹스해 커스터마이징하는 MZ 세대의 트렌드가 주류업계에도 유입되면서 아버지 술로 취급받던 독주에 달달톡톡 탄산 섞은 ‘하이볼(High ball)’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하이볼 유래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우선 18세기 후반 영국의 인공 탄산수 발명에서 비롯된다. 인공 탄산수가 개발되자 당시 영국 상류층을 중심으로 과실 증류주인 브랜디를 탄산수에 타 먹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후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 포도 뿌리에 기생하는 해충 필록세라의 유행으로 브랜디 수입에 차질이 생기자 대체품으로 위스키에 탄산수를 타서 마시는 제조법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스키 앤 소다’, ‘스카치 앤 소다’로 불렀다고 한다. 

당시 골프를 즐기던 영국 상류층들은 장시간 라운딩으로 인한 갈증을 풀기 위해 스카치 앤 소다를 마셨고,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올라오는 취기만큼이나 위로 뜬 공을 보며 하이볼이라고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또, 영국 산업혁명 시기 기차역에서 기차의 출발을 알리기 위한 신호로 쓰인 공 모양의 종을 하이볼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증기기관차 특성상 레일이 맞게 정렬됐으니 빠르게 역을 지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알리기 위한 장치였다.

추후 이 하이볼 신호의 뜻을 알게 된 바텐더들이 빠르다는 느낌을 살려 길쭉한 잔에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칵테일을 제조해 하이볼이라고 명명했다는, 슬랭(Slang, 은어·비속어) 설이 있다.

이 밖에도 유리잔에 탄산수를 부었을 때 동그란 얼음이 올라오는 모양을 보고 붙였다는 등 다양한 설을 가진 하이볼은 유래만큼이나 그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얼음에 독주를 희석해 마시는 방식이 온더락이라면, 하이볼은 얼음에 탄산수 플러스 기호에 따라 각종 시럽과 가니쉬를 더한 위스키 베이스 칵테일이기에, 베이스가 되는 위스키와 부재료에 따라 세계관의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

특히 코로나 이후 국내 주류 트렌드가 홈술·혼술로 취중 되자, SNS와 TV 등에서 각종 하이볼 레시피가 공유되면서 이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하거나 내 입맛에 맞게 변형·제조하며 위스키의 매력에 빠지는 위린이(위스키 입문자)들이 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하이볼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 혹은 상대를 위해 제조하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과 정성이라는 ‘감칠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실 사람의 기호에 맞게 얼음과 탄산수로 독주의 독기를 낮추고, 그날의 컨디션과 무드에 따라 시큼 혹은 달달하게 향과 맛을 첨가한 뒤, 모든 조합이 하나 될 수 있게 열심히 저어진 하이볼 한 입이 입안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상상하면 시원한 그 맛과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심신이 고단한 금요일 오후, 남은 일과를 후다닥 마무리하고 주말에 예고된 비 소식만큼이나 시원한 하이볼 한 잔에 피로를 식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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