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SPC는 사람 귀한 걸 몰라요"

모 작가가 어느 매체에서 요즘 청춘이 사람 귀한 걸 모른다고 말한 적 있는데, SPC에게는 이런 인용구가 적절해 보인다.

기업 연차도, 오너 나이도 청춘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 사람 귀한 줄 모르는 것인지, 이번 SPC 사태를 통해 전 국민이 '사람 없는 ESG 경영 속 제빵왕의 민낯'을 보게 됐다.

지난 달 15일 오전 6시 20분께 경기 평택시 SPL(SPC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를 가동하던 중 기계 안으로 상반신이 들어가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그간의 SPC 관련된 모든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떤 사건도 감히 목숨 앞에 그 무게를 달아볼 수 없지만, 그간 SPC가 소속 근로자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경중을 따지기도 민망할 만큼 가관이다.

지난 3월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의 단식투쟁을 통해 드러난 사회적 합의 불이행과 그를 감추기 위해 감행한 노조 파괴 현장.

사회적 합의에 대해서는 2017년 불법파견 사건을 들여다봐야 한다. 협력업체 제조기사 5,300여 명을 마치 SPC 본사 소속 직원처럼 불법 파견하여 노동력을 착취한 사실이 드러난 것.

파견은 자신의 고용주가 아닌 다른 기업의 지휘나 명령을 받으며 일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파리바게뜨가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으려 교묘히 협력업체 제조기사들을 파견한 것이다.

이들의 소속은 협력업체이기 때문에 노동력 대비 제대로 된 임금 지불이 되지 않았을 경우 문제는 고스란히 협력업체가 해결하는 게 당연한 듯 보이는데, 이는 SPC가 책임회피를 위해 대외적으로 만들어둔 가림수 일 뿐 실질적으로 제조기사들을 지휘 감독한 건 SPC 본사였다.

제조기사들은 본사에서 만들어 나오는 완제품 제외 그날 매장에 진열될 생크림 케이크 포함 각종 빵을 만든다.

기자도 파리바게뜨에서 아르바이트를해본 적 있는데 매장마다 빠지는 물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자가 일했던 세 곳 모두 10시간의 근로시간 동안 제조기사가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17년 당시 불법파견된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휴게 시간도 없이 12시간 넘게 일을 했다고 한다. 어떤 근로자는 한 달에 6번 쉬었는데 월급에서는 8번의 휴일로 계산되어 빠져나간 금액이 찍혀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착취한 노동력의 대가는 110억에 달했다.

불법파견과 근무시간 전산조작을 통한 임금꺾이가 드러나면서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 직접 고용과 체불 임금 지급 등의 지시를 받고 2018년 1월 "3년 내 본사 근무자들과 동일임금 지급" 등의 사회적 합의를 약속했지만, SPC는 지키지 않았고 더불어 본격적인 노조 파괴에 들어갔다.

임 지회장이 단식 투쟁에 돌입할 당시 "오늘부터 우리의 소박하고 정당한 요구인 노조탄압 중단과 약속이행을 위해 단식투쟁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소박하고 정당한 요구는 "일한 만큼 대가를 받고, 노동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기업의 처사로 인해 누군가는 곡기를 끊는 결단까지 내려야 했다.

​이번 평택공장 참변이 일어났을 때에는 어땠는가.

동료의 사고를 목격하여 아연실색한 근로자들에게 당일 작업물량을 맞추기 위해 사고 현장을 흰 천막으로 가려두고 바로 옆 기계에서 계속 작업을 진행하도록 지시했고, 유가족에게 장례식장 상조 물품이라며 SPC 빵을 상자째 가져다 두었다.

근로자 귀한 줄 모르고 몰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SPC가 급하게 방향을 튼 계기는 '불매운동 확산'이었다.

돌아선 민심으로 불길 번지듯 확산될 불매운동 조짐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불매운동은 단순히 기업 이미지 타격을 넘어서 기업 이윤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까.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그룹 전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철저히 재점검하고 안전경영을 대폭 강화하도록 하겠다"며 "종합적인 안전관리 개선책을 수립하고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허영인 회장.

기자회견 당시 어떤 질문도 받지 않고 사과문만 낭독한 후 사라지던 허 회장의 모습에서 과연 이번 약속은 지난 사회적 합의 이행과는 다르게 반드시 지킬 것인가 또 한 번 의구심이 들었다.

각종 기업에서 다양한 형태의 ESG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사회(Social)'에 취중한 듯한 SPC 행복재단의 슬로건이 눈에 띈다.

"창의적 도전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바탕으로 개인과 사회의 행복한 변화를 이끌어 갑니다"

너무 멀리 왔지만, 이제라도 기업을 위해 일하는 근로자 개인의 행복한 변화를 이끌고자 고심한다면 돌아선 민심까지도 제자리로 돌려놓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단,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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