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슈링크플레이션 단속에 기업, “고물가와 계속되는 정부 가격 압박에 불가피한 선택”
전문가,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 문제… 기업은 상품 표시 분명히 하고, 정부는 관련 제도 개편을 통해 개입해야”

 

대형마트 인스터트 커피 코너에서 제품을 고르는 고객. [사진=시사프라임 DB]
대형마트 인스터트 커피 코너에서 제품을 고르는 고객. [사진=시사프라임 DB]

[시사프라임/고문진 기자] “오늘 점심으로 먹은 돼지고기 김치찌개만 해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고기 양이 눈에 띄게 줄었던데, 이를 정부에서 나서서 식당 주인분께 뭐라 할 것인가.”

경기도 김포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남, 30)는 최근 정부의 슈링크플레이션 단속 기사를 접하고 이 같은 의문이 들었다.

철저히 소비자의 입장으로 기업들의 꼼수 판매가 달갑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정부의 이런 움직임이 소비자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는 “흔히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하는데, 적어도 정부는 이 말을 진부하고 식상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업을 잡을 게 아니라 물가 안정을 위한 관련 정책 등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무조건 ‘가격 내려라’, ‘조사하겠다’ 이런 식의 움직임은 일시적인 쇼잉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슈링크(shrink, 줄어들다)와 인플레이션(inflation, 물가상승)의 합성어로, 제품가를 유지하면서 크기나 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일명 ‘꼼수 판매’를 말한다. 이는 기업에서 원자재비나 인건비 등 비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된다.

눈에 보이는 제품가를 인상하면 즉각적인 소비자 반발이 우려되니 전략을 통해서 비용을 전가하는 것인데,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왔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질소 과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고물가 위기를 이겨보려는 이 같은 기업의 대응책은 결국 ‘소비자 기만’이라는 타이틀 아래 기업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러 유통기업의 슈링크플레이션이 들춰지며 도마에 올랐다.

대표적으로 풀무원 ‘탱글뽀득 핫도그’는 한 팩에 5개입에서 4개입으로 바꿨다. CJ제일제당의 편의점 판매 제품 ‘숯불향 바비큐바’는 이달 초부터 중량을 기존 280g에서 230g으로, 서울우유협동조합의 ‘비요뜨’는 143g에서 138g으로 낮췄다. 동원F&B는 ‘양반김’ 5g에서 4.5g, ‘참치 통조림’은 100g에서 90g으로 용량을 줄였다. 오비맥주는 4월부터 카스 묶음팩 중 375㎖ 번들 제품을 5㎖ 줄인 370㎖로 출시했다.

해당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눈에 띄는 변화면 알아챌 수라도 있지, 표시를 안 해두면 5g 줄어든 걸 어떻게 알지”, “질소 유행이 다시 시작됐다”, “정부한테 받은 가격 압박 스트레스를 왜 소비자한테 푸냐”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모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계속되는 가격 인상 제동에 기업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인건비와 원부자잿값은 계속 오르는 반면, 수익성은 떨어지고 있어 불가피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조정은 기업 운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어 이해되는 부분이나, 상품 표시는 분명히 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적극 알려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어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기업과 소비자 간의 신뢰의 문제로, 정부의 이 같은 개입은 바람직하지 못해 상품 표시 계도에 그쳐야 한다”고 답했다. 부연하자면, 무조건 적인 단속이 아닌 상표법 등을 개정해 제품에 변경 사항이나 단위가격 등을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이상 고시하는 등의 제도 개편을 통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의 기업 압박’과 ‘기업의 꼼수 판매’ 피해가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에 근거한 건전한 상거래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22일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관계부처(기재부‧농식품부‧산업부‧해수부‧식약처), 소비자단체, 한국소비자원 간담회에서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소비자신뢰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엄중함을 지적하고, 따라서 시장 동향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더불어 소비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하여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보제공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 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 관련 73개 품목(209개 가공식품)에 대해 조사를 11월 말까지 진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는 12월 초 발표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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