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사장 “가방, 쌍화차 파는 노래 하는 가수가 되고 파”

가방 제작 판매하는 소상공인 김영주 사장. [사진=박시나 기자]
가방 제작 판매하는 소상공인 김영주 사장. [사진=박시나 기자]

[시사프라임 / 박시나 기자] ‘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여자들에겐 한번쯤 어깨나 손에 들고 길거리를 활보하고 싶어하는 세계 3대 명품 브랜드 가방이다.  또, 누군가는 내가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며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놓고 싶어하는 디자이너들도 수없이 많다. 

기자가 만나본 소상공인 중 한 사람은 어릴적 부터 가방 제작 판매를 ‘천직’으로 꿈을 키운 인물이 있다.

여고 시절부터 평범한 가방도 리폼해서 학교에 가져가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디자이너를 해보라는 말을 곧 잘 들었다는 김영주 사장(여 63세)이 그 주인공이다. 김 사장은 “그때도 저는 가방에 진심이였습니다”라며 한 마디로 본인을 정의하며 웃음을 보였다.

소상공인 첫발은 39세, 마흔이 채 못 되었을 때이다. 친구와 함께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부업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한국 명품 가방의 손잡이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일에 재미를 느끼고, 이 사업에 뛰어들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고 한다.

부업의 경험과 주변의 조언을 바탕으로 기리매 공장(가죽에 약칠하는 작업)을 시작하자 거침없이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86평의 공장을 얻고, 작업에 필요한 기계들과 직원들 서른여섯 명 정도를 두고 시작한 사업은 제법 순환이 되었고, 매출도 덩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역풍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번창하며 꿈을 키웠던 그에게도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온 위기가 닥쳤다. 다름아닌 4년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영향이 가방 사업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가방 등 유통사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TV홈쇼핑, 대형마트, 백화점이 주요 유통 채널이지만 코로나 시기에 쇼핑, 가방 판매 방송들이 대폭 줄었고, 백화점은 가방 단독 매장 보다는 팝업 스토어로 전환하는 분위기였다. 국내외 주요 가방 브랜드들은 가방의 오더 수량 및 생산 물량이 최소 50% 이상 줄어들었고, 그 여파는 어김없이 김 사장에게도 큰 고비였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코로나 때 큰 빚을 지고 고민하다 마스크 제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그는 마스크 공장을 한 달 넘게 쫓아다니며 첫 주문을 받고, 마스크 만개를 제작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을 발휘하며 인정을 받기시작해 코로나의 격변의 시기를 버텨냈다.

그러나 김 사장의 마음 한 구석에는 가방 제작 판매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시 가방 제작 주문이 들어오자 과감하게 마스크 사업을 정리하고 가방 제작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키운 꿈, 가방은 원동력이자 지금의 그를 지탱하는 ‘천직’과 같았다.

어릴적 가수의 꿈, 노래하는 소상공인 사장이 되고 싶다는 김영주 사장.  [사진=박시나 기자]
어릴적 가수의 꿈, 노래하는 소상공인 사장이 되고 싶다는 김영주 사장. [사진=박시나 기자]

노래하는 소상공인의 삶을 통해

코로나 시기 겪었던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가방 파는 찻집

이후에 가방을 파는 매장을 활용해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면서, 쌍화차 카페를 시작했고, 쌍화차를 만드는 것도 직접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지금의 맛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가게 앞에 진열된 가방에 끌려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찐한 쌍화차 향기에 매료되어 가방구매를 잊어버리게 되는 곳. 어쩌다 보니 쌍화차를 팔게 됐다는 김 사장은 “유명한 쌍화차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 부부가 찾아와서 맛의 비결을 묻을 정도로 이 맛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정 받은 맛입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쌍화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김 사장에게는 잔다르크의 기운이 느껴질 만큼 말투와 표정에서는 강한 면이 엿보인다. 그러나 소상공인의 삶을 풀어낼 때는 영락없이 철갑 입은  소녀의 모습을 드러냈다.

어렸을 때부터 가수가 되고 싶었다는 김 사장은 지금도 가수로써 무대에 오른다. 심금을 울리는 락 발란드를 부르는 게 좋다는 김 사장에게 소상공인의 삶이란?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즉각 답했다.

절망 속에서 다시 해보자고, 용기를 준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이 의리를 지켜주는 것에 감동해서 다시 용기를 얻고, 잘해보고자 했던 용기를 짓밟는 것도 사람이었다고, 보이싱 피싱 사기를 당하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고, 무엇을 해야 하나 싶을 때도, 나는 여자가 아니라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외치며 이겨내게 한 것도 아들, 사람 이었다고 말한다.

끝으로 김사장은 “노래하는 소상공인의 삶을 통해 코로나 시기에 힘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코로나의 절망 속에서도 우리 주변에 작은 잔다르크의 소상공인을 만나 이 시대의 소상공인들을 응원해 본다.

저작권자 © 시사프라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