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코너는 우리네 전통시장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전통시장이 갖는 역사와 유래, 고유의 기능 및 현재 전통시장이 겪는 어려움 등을 통해 지역주민과 함께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23. 4. 15.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 내리면 서울풍물시장으로 나가는 출구 및 풍물시장에 대한 소개가 잘 돼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5.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에 내리면 서울풍물시장으로 나가는 출구 및 풍물시장에 대한 소개가 잘 돼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사진=백나은 기자]

[시사프라임 / 백나은 기자]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곳’이 있다. 의류, 가방, 생활잡화부터 마트나 일반 시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옛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희귀하고 재미난 물건들을 접할 수 있는 곳. 바로 동대문구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이다. ‘새것’보다는 ‘헌것’을 주로 다루는 시장으로 오랜 단골들이 형성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6번 출구, 혹은 9번이나 10번 출구를 나와 골목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서울풍물시장을 만날 수 있다. 현재 자리에 풍물시장이 자리 잡은 것은 지난 2008년이지만 그 역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3. 4. 14. 서울풍물시장 상인회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 시절의 전경 사진.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4. 서울풍물시장 상인회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동대문 풍물 벼룩시장 시절의 전경 사진. [사진=백나은 기자]

◆ 황학동시장을 아시나요

서울풍물시장은 과거 논밭이었던 곳에 황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황학동에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황학동은 서울의 사대문 가운데 하나인 동대문의 바깥에 위치해 있으면서 주로 채소를 생산해 서울 주민들에게 공급했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청계천 주변으로 몰려들면서 이들이 생계를 위해 노점과 고물상을 시작한 것이 황학동시장의 시작이다.

황학동시장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주로 골동품을 취급하면서 크게 성장했지만 1980년대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정비가 이뤄지면서 골동품을 다루던 점포들이 장안평(답십리)으로 대거 이전된다. 한때 최고 130여 곳에 달하던 골동품 가게의 수가 20여 곳 안팎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골동품 상권도 소실돼 버린 것이다.

대신 중고품을 판매하는 점포와 노점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점포와 노점의 수는 날로 증가했고,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가 닥치면서는 그 수가 더욱 급증했지만 2000년대 초반 청계천 복원공사가 이뤄지면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들 노점은 2003년에 폐쇄된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으로 옮겨 동대문풍물벼룩시장을 개설했고, 이후 2008년 현재의 자리에 서울풍물시장을 열게 된다.

23. 4. 14. 서울풍물시장 입구.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9번 및 10번 출구로 나와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4. 서울풍물시장 입구.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9번 및 10번 출구로 나와 어렵지 않게 찾아올 수 있다.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4. 서울풍물시장 외부 전경.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4. 서울풍물시장 외부 전경. [사진=백나은 기자]

◆ 벼룩시장, 도깨비시장 이름도 갖가지

청계천과 함께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빈민계층의 거주와 생계유지를 위해 형성됐던 서울풍물시장은 일명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유래하는데, 그중 하나는 취급하는 물건이 마치 도깨비의 물건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낮에는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장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외에도 오래되고 망가진 물건이라도 이곳에서는 감쪽같이 새것으로 된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으로 불린다는 설 등 그 유래도 다양하다.

‘벼룩시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더 재미있다. 상인들이 벼룩이 뛰듯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희귀한 물건을 모아오기 때문에, 혹은 물건이 오래된 만큼 금방이라도 벼룩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의미에서 ‘벼룩시장’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시장에 있는 모두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개미시장’, 없는 물건이 없다고 해서 ‘만물시장’, 구식이 된 물건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라 해서 ‘마지막 시장’, 각종 고물을 취급한다고 해서 ‘고물시장’ 등 그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각기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한결같이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곳이라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서울풍물시장은 추억의 장소이자, 추억을 만들어갈 장소로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23. 4. 14. 40년째, 이곳 서울풍물시장으로 옮겨서는 16년째 한방차를 판매하고 계신 이범휘 선생님(맨 왼쪽). 멀리서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그에게는 큰 힘이 된다. [사진=백나은 기자]
23. 4. 14. 40년째, 이곳 서울풍물시장으로 옮겨서는 16년째 한방차를 판매하고 계신 이범휘 선생님(맨 왼쪽). 멀리서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그에게는 큰 힘이 된다. [사진=백나은 기자]

◆ ‘추억은 방울방울’…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단골손님

코로나19 이후 전통시장도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는 것 같았지만 직접 만나 들어본 상인들의 입에서는 “더 어렵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만큼 경기가 많이 어려워진 탓이다.

서울풍물시장 역시 그렇다. 시장을 찾은 지난 13일 풍물시장 곳곳에 손님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단골손님이거나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아무래도 시장의 성격이 있다 보니 젊은 층보다는 연령층이 높은 분들이 눈에 자주 띈다.

멀리 고양시에서 일부러 이곳 풍물시장을 찾은 어르신 두 분이 따뜻한 한방차 한 잔과 함께 오래된 벗과 담소를 나누시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이곳 풍물시장에서만 16년째, 지금까지 40년을 한방차 점포를 운영하고 계신 이범휘 사장님에게 ‘풍물시장’은 그야말로 인생이고 추억이고 삶의 일부가 됐다. 경기 탓에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 먼 곳에서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 웬만한 건 다 있는 추억의 ‘서울풍물시장’ ②에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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