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인터뷰② - G’L 청소년연구재단 상임이사 윤철경 박사

현장에서 바라본 학교 밖 청소년들, 그들의 현실과 미래 ‘우리 시대 자화상’

“어른들 다 알고 있다는 생각 정지하고 멈춰야···아이들 믿고 가는 것 필요”

소리 안내는 아이들 “속마음 있는 그대로 들어줘야”···핵심은 관계와 공감

윤철경 박사는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윤철경 박사는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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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라임 / 양하늘 기자]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은둔형 외톨이’ 점점 그 수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현상이 돼버렸다. 청소년기부터 은둔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현실은 어떤 상황이고 문제는 무엇일까.

“요구는 많이 받았으나 수용당한 경험 없어” 자기표현 약해

지엘청소년연구재단 상임 이사로 학교 밖 청소년 연구에 힘쓰고 있는 윤철경 박사는 자기표현을 못 하는 아이들일수록 학교 폭력 피해나 억울한 일,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대부분 표현이 잘 안된다고 했다. ‘표현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이 안 되는 것’이라며 부모나 교사의 요구는 많이 받아봤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수용당한 경험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아이들은 자기표현이 굉장히 약해요. 은둔형 외톨이 아이들 부모의 대체적인 특징이 ‘해야 한다’가 강한 분들이 많아요. 부모든 학교든 교육을 위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해야 한다’의 요구가 강한 거죠. 부모들 중에는 부모로서 미성숙한 분들도 있고 의외로 가부장적이고 언어폭력으로 얼어붙어있는 분위기의 가정들도 많아요.”

윤 박사는 대체로 그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은 무기력해진다고 했다. 이처럼 부모 밑에서 무기력해진 아이들도 있고, 부모가 없어서 무기력해진 아이들도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아이들이 집에서 이런 걸 뚫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하면 학교에 가서 어려움을 겪어요. 학교가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거든요.”

지금 학교는, 공부보다 관계 문제가 더 어려운 숙제

윤 박사는 지금 아이들의 힘이 약한 원인은 ‘무기력’이라고 했다. 갈수록 학교에서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말썽을 안 피우니까 학교는 그냥 놔두고 있지만 ‘숨만 쉬고 있는 애들, 눈동자가 풀린 애들, 아무 의욕이 없는 애들’ 교사들은 이렇게 얘기하면 알아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그러고 있는지를요.”

부모들 입장에서는 ‘요즘 아이들은 왜 이러느냐’고 할 수 있지만 윤 박사는 ‘사회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인간은 인간과 교류하면서 행복을 느껴요. 인정과 사랑을 받고 교류하면서 행복해지는데 이 부분이 약해지니까 지금과 같은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윤 박사는 학교에서 친구 맺기가 어려워 아이들이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며 공부보다 관계 문제가 더 어려운 숙제가 되었다고 했다. 단순히 공부가 재미없으면 다른 재밌는 걸 찾으면 되지만 아이들에게 더 어려운 문제는 관계 문제라는 것이다.

“옛날과 달라요. 학교에 가서 자기표현이 약한 아이들은 생존하기가 어렵고 거기다 요즘은 인간관계가 힘들어요. 옛날에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어울리고 친구하고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왕따 당하지 않으려고 서로 긴장하는 인간관계에요. 친구 사귀기가 너무 어려워요.”

은밀·개별화된 또래 문화, 경쟁 속 긴장관계···마음 풀 곳 없어

“이 아이들이 무기력을 이미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학교라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 청소년기에 동료 관계를 형성 못하면 외톨이가 되는 거예요. 이때 친구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하죠.”

윤 박사는 공동체 간에 서로 인정해 주고 배려해 주는 문화가 있었던 예전에 비해 지금의 또래관계가 경쟁적이고 매우 개별화됐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과거에는 집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애들끼리 풀어버렸어요. 입시가 힘들어도 애들끼리 풀었어요. 입시 경쟁 언제나 있었고, 일하는 부모들도 언제나 있었는데 왜 지금 아이들은 더 힘들어하냐고요? 학교라는 공간이 과거와는 다른 긴장의 장소가 돼버렸기 때문에 또래관계가 매우 어려워졌어요. 풀 곳이 없어요. 좋은 척하고 지내지만 아이들이 속으로 조심해요. 이런 게 달라졌어요. 아이들이 살기가 힘들어진 거죠.”

윤 박사는 내신제도로 인한 또래 간 경쟁 관계의 문제도 짚었다.

“아이들의 또래관계가 내신이 들어오고 난 다음부터는 경쟁 관계가 돼버렸어요. 아이들 간에 공부 안 하는 척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쟤는 또 공부 안 하는 척하고 혼자 공부했어’라든가, 시험 전에 노트를 훔쳐 가고 도난당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다른 아이 공부 못하게 하려고요. 슬픈 일이에요. 이런 일이 벌써 20여 년 전부터 진행됐으니, 내신 등급화가 어떻게 보면 아이들에게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일이 된 거죠.”

누군가는 더 나은 학업 환경과 공정한 기준을 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을 내신제도.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또래 관계 속 경쟁과 긴장감을 팽배하게 당기는 역할이 됐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해요. 지하철을 탔는데 출퇴근하면서 매일 만나는 같이 탄 사람들,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요 없는 사람인가요. 매일 만나서 얼굴은 보지만 앉을 자리도 없이 꽉 찬 상태로 가다가 목적지로 가기 전 누군가 먼저 내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좋지요. 내 공간이 넓어지니까.”

윤철경 박사는 아이들의 또래관계가 서로 조심하는 긴장관계로 경쟁적이고 개별화됐다고 진단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윤철경 박사는 아이들의 또래관계가 서로 조심하는 긴장관계로 경쟁적이고 개별화됐다고 진단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윤 박사는 내신등급이 교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봤다. 대학 입학까지 가야 하는데, 누군가 중도 하차하면 중간에 경쟁자가 줄어들게 되는 부분에 안도한다는 것이다.

“대신 자신의 등급이 올라가도록 받쳐주는 대상도 줄어들기 때문에 숫자가 줄면 내 등급도 줄어들까 봐 걱정부터 해요. 또래관계 속 서로의 존재가치와 필요 여부가 이런 식으로 형성돼버리는 거죠.”

학교폭력 문제도 공부에 관심 없는 아이들은 ‘노는 애들’, ‘문제아’로 분류되면서 건강한 노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략되고 단속과 대응책만 있어 오히려 더 은밀해졌고 아이들은 힘들어졌다고 했다.

“친구 사귀는 그룹은 노는 아이들 위주가 되어있어요. 이 아이들이 몰려서 힘이 생기니까 남한테 피해 주기 좋잖아요. 논다는 게 재미로 피해를 주는 거예요. 거기서 찍히면 괴로운 거죠. 찍히지 않으려고 긴장해야 돼요.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지금 그렇게 되어 있어요.”

윤 박사는 학교에서의 인간관계가 힘들어졌고 재미가 없어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사람은 누구나 맨 처음 태어나서 제일 가까이에서 교류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부모에요. 그다음엔 누구죠. 친구예요. 그런데 이 부분이 왜곡돼 버리니까 아이들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이 부분이 건강하면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견딜 거예요. 그런데 이 부분이 왜곡되어 있잖아요. 많은 또래관계가.”

말 잘 듣는다고 좋아하면 안 돼···부모가 수용적이 돼야

이런 문제 상황을 안고 있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등교를 거부하는 순간, 현실을 모르는 부모들과 또다시 갈등을 겪게 된다.

“학교 폭력 피해를 당해서 자신은 억울한데 내 입장은 잘 표현을 못 하는 거예요. 표현이 안되는 거죠. 그럴 때 부모는 갑자기 머리 좋은 애가 학교를 안 간다고 하니까 훈육이나 체벌을 해요. 그럴수록 아이는 더 학교에 안 가고 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도 내 편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부모는 ‘네가 잘못해서 그렇지’라고 해요. 결국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고립이 되는 거예요.”

이렇게 관계에서 고립된 아이는 ‘내 편은 아무도 없고 나는 또 당할 거니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가장 안전한 곳이라 생각한 공간으로 들어간다. 부모는 말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윤 박사는 아이가 말 잘 듣다가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말 잘 듣던 아이들’이 그렇게 되는 거라고 했다.

윤철경 박사는 아이들이 살기 힘들어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윤철경 박사는 아이들이 살기 힘들어진 지금의 현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양하늘 기자]

“교사나 부모들 입장에서 보면 말 잘 듣고 순응적인 아이들이에요. 크게 눈에 띄는 잘못을 안 해요. 말 잘 듣고 없는 듯이 살다 보니 이 애들이 학교에서는 이른바 투명 인간이에요. 존재가 없이 끼어 살 만큼 끼어 살다가 어느 순간 힘이 없어지는 거예요. 참고 견디다가 힘이 소진되는 그때 주저앉는 거지요. 말을 듣다가 지쳐서 안 한다고 저항하는 거예요. 말썽 피우는 애들은 소리도 치고 적극적으로 저항을 하잖아요. 얘네들은 소리 없이 저항하는 거예요. 들어가 버리는 거죠.”

윤 박사는 학교생활이나 또래관계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힘을 못 얻는다고 했다. 그 시기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사회기 때문이다.

“부모는 이때 아이들이 이 과정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우리 아이가 조용하고 말 잘 듣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의사를 반드시 표현하게끔 만들어주셔야 해요.”

아이들은 부모가 어떻게 해줄 때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윤 박사는 ‘부모가 잘 들어줄 때’라고 했다. 아이의 입장이 어떤지 귀 기울이고 ‘잘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모는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무엇무엇을 해라’ 하고 답을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답은 아이들이 찾아야 되는 것이고 부모는 ‘마음이 어떠니, 오늘 어떻게 지냈니, 어 그래. 그랬구나’ 이렇게 수용적이어야지 아이들이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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